제주도 이야기

사려니숲길서 보낸 시월의 마지막 날

Chipmunk1 2022. 11. 7. 05:00

2022. 10. 31.

사려니는 '살안이' 혹은 '솔안이'라고 불린다고 하는데요. 여기에 쓰이는 살 혹은 솔은 신성한 곳이라는 신역의 산명에 쓰이는 말이라지요. 그래서,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지난날 올레길을 걷다가 휴식이 필요할 때면 으례 찾던 사려니숲길이 이제는 제주를 찾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답니다.

사려니숲길은 붉은오름입구에서 시작해서 비자림로가 있는 곳으로 나오기도하고, 반대로 출입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붉은오름입구에서 시작하는 사려니숲길 탐방을 선호합니다.

붉은오름입구에서 시원하게 뻗은 삼나무들의 사열을 받으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노라면, 지금이 어느 계절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반겨주는 사려니숲길은 사려니계절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철이 늘 푸른 한결같은 풍경이 있으니, 봄여름가을겨울과 더불어 다섯개의 계절이 사려니숲길에 있지않나 싶습니다.

거기에다, 오늘 시월의 마지막 날에는 파란 하늘이 삼나무 군락 사이를 뚫고 "나는 사려니숲길 제5계절의 덤입니다"라고 이야기 하듯, 운이 좋을 때만 볼수 있는 파란 하늘이 붉은융단이 깔린듯한 사려니숲길과 삼나무와 더불어 멋진 조화를 이루는 일년중 최고의 날인듯 합니다.

늦은 봄부터 여름 까지 산수국 군락이 예쁜 사려니숲길에는 거짓말 같이 아직도 산수국이 피어있고, 비록 가화(假花)일 망정 곱고 짙은 분홍빛 산수국의 수줍은듯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에서 계절이 흐름을 잠시 멈추고 사색에 빠져있는듯이 보입니다.

그런가하면, 여름내내 조금은 상쾌하지않은 향기를 지닌 상아빛 누리장나무꽃이 지고, 빠알갛게 익어가는 꽃받침 위에 짙은 사파이어 빛깔의 보석같은 열매가 사려니숲길에서 잠시 멈춘 계절에게, 지금은 가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시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살짝 귀띔하는듯 합니다.

삼나무 군락을 지나고, 누리장나무와 단풍나무가 나란히 숲을 지키다가 사려니숲길의 중간지점으로 전체 길이 10km 중, 4.8km 지점인 물찻오름 입구까지는 단풍이 숲길과 숲속을 가리지않고 사려니숲길의 가을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붉은오름입구에서 출발해서 비자림로 까지 완주하는것도 좋기는 하지만, 몇차례 경험한 바로는 비자림로에서 자동차가 주차되어있는 붉은오름입구 까지 돌아오는 교통편이 만만치가 않으므로, 오솔길과 산책로등이 있는 붉은오름입구 방향으로, 조금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씩씩하게 내려 갑니다.

한참을 잊고 내려오다가 숲길 오른쪽 한적한 오솔길로 새소리와 바람소리의 안내를 받으며, 가을 내음이 가득하고 아기자기한 오솔길을 무념무상으로 걷고 또 걷습니다.

그리고, 숲길이 단풍구간을 지나 삼나무 군락을 지날 즈음에 삼나무 숲속 산책로가 오른쪽에서 어서 오라고 손짓합니다. 600미터 정도의 빽빽한 삼나무 숲을 한바퀴 돌아서 출발지점으로 회귀하는 산책로에서 5분 남짓, 아무런 방해도 없이 피톤치드와 함께한 짧은 시간이 평생의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합니다.

붉은오름입구가 가까워오니, 반가운 미로숲길이 야자수껍질이 깔려있는 숲길로 안내합니다.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간간히 들려오는 5분여의 시간이 꿈같이 흘러갑니다.

미로숲길과 연결된 삼나무숲 데크길이 시월의 마지막 날 사려니숲길에서 행복하게 보낸 여정을 마무리하라고 합니다.

조용한 삼나무 숲속에서 숲속의 맹주인 까마귀 소리를 이겨내고, 유쾌하게 끊임없이 웃고 대화하는 아주머니들의 신명난 목소리를 뒤로하고 자동차 소음이 점점 가까워 오는 속세로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