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법환해안에서 해넘이를 만나다

Chipmunk1 2022. 11. 5. 05:00

2022. 10. 29.

서귀포 향토 오일장은 제법 크게 열렸다.

고성의 오일장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규모는 고성오일장의 곱은 넘었고, 대정오일장 보다는 세곱은 넘는듯 보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시장에 온 인파는 한산한 편이었는데, 보말칼국수로 알려진 식당에서는 줄을 서서 식사를 해야했고, 호떡집에도 긴줄이 늘어서 장날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호떡가게 앞의 고구마를 파는 60대로 보이는 사내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흥정 끝에 말로 감정 싸움을 하는, 어린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갔었던 시장에서 자주 목격했던 삶의 현장에서, 누가 옳고 누가 이긴거라고 신나서 자평하는 옆의 다른 상인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상인은 나의 반응에 더욱 신이난듯 말싸움 장터의 해설자 역할을 그럴듯하게 해대는 모습에서 아련한 옛날 장터의 정감어린 그 시절의 추억과 나의 어머니를 추억하게 만든다.

끝자리가 4일과 9일에 서는 다음 장은 오일 후가 될게다.

오일장에서 보말칼국수로 점심을 먹고, 호떡과 빙떡도 맛보고, 필요했던 감자랑 양파랑 마늘과 귤을 조금씩 샀다.
그런데, 서귀포에 있는 대부분 대형마트에서는 박스 단위로 판매하는 귤은 거의 없었고, 대신 100그램 단위로 소포장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어느 마트의 관계자 말씀이 제주에서는 귤을 사먹는 주민들이 거의 없어서 박스 단위 구매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도로변의 관광상품 판매처나 올레시장(전반적으로 물가가 비싸다는 소문과 느낌에 구경만 하는 곳)에서나 가능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제주 주민들은 돈주고 귤을 사먹는 일이 거의 없고, 주변에서 쉽게 얻거나 스스로 경작하기 때문이란다.

해질 무렵, 올레길 7코스가 지나는 멋들어진 법환해안을 걷다가 제주 NOW CCTV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비춰주던 부근에서, 붉어오는 저녁노을과 구름 사이에서 쉼없이 숨박꼭질중인 저녁 해와 짧았지만 강열하게 조우했다.

CCTV로만 보아오던 법환해안에서 거친 파도의 외침과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마주하는 저녁노을과 이따금씩 불쑥 튀어 나왔다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해가 야속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파도소리와 바람을 영상이 아닌 몸으로 직접 느끼고 서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했다.

단순히 사전에 준비된 일정대로 찾아가서 보고 먹고 즐기는 여행에서 벗어나, 그때 그때 발길 닿는대로 생각하지 못했던 곳도 가보고 육지에서 흔히 접했던 프랜차이즈 식당도 가보고, 가만히 서서 파도소리와 바람소리와 새소리등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것 만으로도 즐겁고 만족스런 여행이 될수 있음에, 바로 앞에서 범섬을 볼 수있는 법환해안에서 해넘이 보다는 붉은 저녁노을을 즐기면서 소확행하는 참여행의 묘미에 점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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