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여우길(광교호수)과 광교산 자락에서 가을의 끝을 잡고

Chipmunk1 2017. 11. 15. 21:18

  낚시를 하고, 오리배도 타고, 부대찌게가 유난히 맛이 있던 원천유원지 입구는 어디 였었는지?
솔밭을 지나 장수촌누룽지닭백숙집은 어디에 있었던 건지?
상전벽해가 따로 없고,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날 정도로 2000년대 중반 까지 즐겨 다녔던, 지금의 광교호수(원천유원지)를 사십년 지기와 함께 걸었다.


  수원광교박물관이 있는 역사공원에서 예외없이 인증샷을 하고, 굴다리를 지나 광교 카페거리를 지나는가 싶었는데, 광교호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스러웠던 미세먼지도 물러가고, 높푸른 가을 하늘을 다시 만나, 같은 고등학교와 같은 대학을 나온 사십년지기와 오랜만에 함께 걷는 여우길은 호수를 에워 싼 초고층의 지나치게 인위적인 새로운 스카이라인이 조금 맘에 거슬렸어도 상관없이 즐거웠다.

어느새 광교호수를 지나 찻길을 건너 본격적인 여우길로 접어 들었다.


  올레길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자동스탬프가 여우길에는 있었다. 역시나, 지자체의 예산이 투입되니, 이정표를 포함한 스탬프 스탠드 까지도 럭셔리해 보인다.
순전히 자발적인 기부방식으로 유지 발전되어온 제주올레길의 소박하고 정감가는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한참을 산책길을 따라가다, 수원의 법조단지를 지나고, 엊그제 귀순길에 총탄을 맞고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안타까운 북한군 병사가 입원해 있는 아주대병원을 지나서, 고즈넉한 자태를 나타낸 조계종의 제법 규모 있는 승가대학이 있는 봉녕사의 가을은, 막바지로 불타고 있는 단풍과 샛노란 은행잎의 조화로 익을 대로 익어가고 있었다.


  봉녕사의 가을에서 빠져나와, 광교신시가지를 오른쪽으로 돌아 수원남부경찰서와 수원외고를 지나 재작년 까지, 올레길을 걷기 전 수년간 인연을 맺어 낯설지 않은 경기대학교로 들어와, 경기대에서 근무했던 후배와 자주 찾았던 정문옆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카페에서, 오늘은 친구와 감개무량하게 목살스테이크로 점심을 나눴다.


  점심 식사후, 카페 뒤편에서 이어지는 광교산 등성이에 올라서자 마자, 왼쪽 아래에 있는 광교저수지에서 불어오는, 마치 삭풍같은 세찬 바람으로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가 체감온도를 한없이 낮추었고, 움추린 몸으로 걸음을 재촉하여 잰걸음으로, 형제봉으로 오르는 길의 오른쪽 모퉁이를 지나니 신기하게도 바람이 잠잠해지고 따스한 햇볕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볕이 그리운 계절이 되었나보다.


  볕을 쬐고 있는 친구는 벌써 한 겨울에 서 있는듯 했다.


  스마트폰에서 급박한 경고음이 울린건, 바로 햇볕을 찾아 걷던, 버들치고개를 향하던 오후 두시반 이었고, 제천에 있는 아들이 강의실 건물이 흔들린다고, 지진이 났다고 문자를 보내온 것도 바로 그 시간이었다.
큰 피해가 없어야 할텐데.....서둘러 버들치고개를 내려왔다.


  버들치고개를 내려와 집이 있는 방향을 등지고, 오전에 출발했던 수원광교박물관 앞으로 내려와, 지나면 늙지 않는다는 불로문을 지나 박물관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와 꽃팥빙수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박물관 관람에 나섰다.


  수원시와 카친을 맺으면,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수원박물관과 수원화성박물관, 그리고 수원광교박물관을 금년 말까지 무료로 입장을 할 수 있다하여, 그 자리에서 카친을 맺고, 다소 단출한 수원광교발물관 까지 둘러보고 친구와 작별하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포항의 지진 소식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마무리를 했지만, 오늘의 여우길과 광교산 둘레길 트레킹은 미세먼지 때문에 제주여행에서 돌아온지 정확하게 일주일만에 바깥 나들이를 나온 내게는 정말 행복한 시간었다.
더군다나, 만날때 마다 어떻게 하면 남은 생을 보람되고 즐겁게 살것인지를 끊임없이 토론하곤 하는, 아내들이 알면 철없다 할 사십년지기 친구(4년전, 내게 대중교통 이용법과 혼자 여행하는 즐거움을 사사해준 고마운 친구)와 함께해서 더욱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