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야기

한여름의 폭염 속 열대식물원에서 횃불생강(에틀린케라 엘라티오르[Etlingera Elatior])과 조우(遭遇)하다

Chipmunk1 2023. 8. 22. 04:39

한여름에 재킷을 입고 동굴에 들어가 본 적도 있었고, 한겨울에 추위를 피해 열대식물들이 있는 온실에 들어가 본 적은 있었지만, 한여름만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온실에 들어간 적이 없었는데, 올여름의 특별한 폭염은 바깥보다는 오히려 온실이 상대적으로 기온도 낮을 뿐만 아니라, 직사광선을 피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영흥수목원의 열대식물원에 더위를 피해 들어가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네요.

그런데, 일반 건물로 비교하자면 3~4층은 족히 되는 높이의 식물원 중간쯤에서 횃불을 연상시키는 조형물 같은 것이 녹색 숲 속에서 어렴풋이 보여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가까이 가려는데, 반대 방향에서 오는 탐방객들의 대화 속에서 "저건 빨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이쁘긴 이쁘네"하며 나그네를 스쳐 지나갑니다.

나그네도 처음에는 개장한 지 얼마 안 된 식물원이니 제대로 열대식물이 자리잡지 못해 조형물로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나 보다 하고 지나칠 만큼, 생화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선명한 색상과 사출기에서 방금 찍어 낸 듯한 질감에 그들이 옳다 하고 지나치려 하다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잎과 줄기는 분명 플라스틱이 아니었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일 듯 말 듯 세워져 있는 식물 안내판을 보니, 횃불생강이라 적혀 있네요.

생전 처음 보는 꽃이라 검색해 보니 꽃이 핀 모습이 마치 올림픽 성화 같은 횃불을 연상시킨다 하여 횃불생강(Torch Ginger)이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열대식물이라고 합니다.

역대급 폭염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열대식물원에서 땀도 식히고, 덤으로 생각지도 않은 횃불생강도 보게 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일을 어쩌다 아주 가끔 만나게 되는데, 푹푹 찌는 폭염 속에 찾은 열대식물원에서 정열적인 사랑이란 강렬한 이미지의 꽃말을 가진 횃불생강을 만나 잠시 더위와 시름을 잊는 뜻밖의 신선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세상만사가 귀찮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거의 수동적으로 일상을 살아간다면,  그날이 그날 같은 그저 그런 정체되고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삶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변화하는 계절의 삼라만상과 함께 호흡하고자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역동적인 삶 속에서, 인생이라고 하는 짧은 소풍의 순간순간 얻게 되는 소소한 즐거움을 오래도록 간직하고자, 몇 장의 사진과 더불어 몇 글자 긁적여 놓았다가 이따금씩 들여다보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승화시키면서 나만의 소확행에 조금씩 근접해 나아간다면, 확정되지 않은 시한부의 유한한 삶의 종점이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해도 전혀 아쉬움과 지나간 삶에 대한 후회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편안히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앞으로 며칠간 내리게 될 비는 더 이상 피해 없이 다만, 지긋지긋한  폭염을 벗어나기 위한 가을로 가는 훌륭한 촉매제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이 비로 말미암아 기온이 낮아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오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면서, 일사천리(一瀉千里)로 만사형통(萬事亨通)하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피그말리온의 간절함으로 기도하고, 아울러 횃불생강이 세상을 환하게 밝혀줄 것만 같은 희망의 나날들이 우후죽순처럼 쉼 없이 솟아나기를 기원하면서, 비요일이 될 화요일을, 새로 장만한 우산을 처음 펼치는 설레는 마음으로, 활짝 열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