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당화 12

스산한 봉정사 영산암

2025. 02. 16.언제나 그랬듯이 잠시나마 포근하게 나그네의 쉼터가 되어주는 영산암은 파릇파릇한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아 정월대보름이 사흘이나 지났어도, 봄기운은 어디쯤 와있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나한전 아래 작은 정원에 산당화도 큰꿩의 비름도 때를 기다리며 아직은 생명이 움트고 있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바싹 말라버린 스산한 고요함에 '나 여기 있소' 나지막이 속삭이는 그나마 초록빛을 간직한 채 마당을 덮을 기세로 홀로 서있는 소나무가 봄의 희망을 전해 줍니다.속세의 온갖 번뇌와 시름을 잠시 내려놓고, 이제는 조금씩 동이 터오기 시작하는 영산암을 뒤로하면서, 이 땅 위의 삼라만상이 순리대로 하루속히 제자리를 찾기를 앙망해 봅니다.

여행 이야기 2025.02.23

만추의 내장산 서래봉 아래 벽련암에는 봄이 함께있었다

2024. 11. 25.내장사 일주문에 들어서기 직전 오른쪽 가파른 산비탈길 서래봉 가는 길목의 벽련암 가는 길 양편에는 곱디고운 애기단풍잎들이 누군가가 일부러 사진을 찍으려 인위적으로 연출이라도 해놓은 듯 가지런하고 촘촘하게 떨어져 쌓이고, 산속은 온통 단풍 든 나무들이 만추의 내장산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습니다.암자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규모의 벽련암에도 어느덧 가을이 막바지 떠날 채비를 마친 듯, 곱게 물든 단풍잎들이 이따금씩 부는 바람에 날려 발아래 휘리릭 떨어져 쌓이고, 흰구름이 사랑방인양 걸터앉아 있는 서래봉을 푸른 하늘이 선명하게 눈앞 가까이 데려다줍니다.이른 봄부터 담장아래 피기 시작한 자색달개비가 여름을 지나고 가을의 끝자락에서도 면면히 피었다 지었다를 반복하기에 벽련암에는 아직..

여행 이야기 2024.12.04

벽련암의 어색한 가을풍경

2024. 10. 17.내장산 서래봉 아래 벽련암은 웬만한 사찰에 비해 규모면이나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암자인 것이 의아한 암자임에 틀림이 없지 않나 싶은 아름다운 고찰급의 암자입니다.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가을이 왔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봄과 여름과 가을이 혼재된 듯 보입니다.진공당 뜰에는 채 지지 않은 철쭉이 미려하게 꽃을 달고 하늘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고,담장 아래 자주달개비 꽃밭에는 봄에 피었던 꽃이 하나 둘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고, 호리꽃등에 한 마리가 자주달개비꽃을 희롱하고 있으니, 봄이 오나 착각하게 합니다.뿐만 아니라, 봄의 전령사 산당화(명자꽃)가 봄이 오고 있다고 빼꼼히 고개를 들고 진공당 뜰에 서있고, 연못을 내려다보고 서있는 여름꽃 꽃무릇이 여전히 참사랑을 갈구하고 있습..

여행 이야기 2024.10.19

4월의 봄이 익어가는 영산암

2024. 04. 20.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십 대 정원 봉정사의 영산암 재작년 가을부터 작년 가을까지 일 년여 긴 시간을 수리하느라 분주하더니 이제는 온전히 예전모습 예전 분위기로 봄을 시작하는 영산암이 궁금하여 봉정사에 들를 여유 없이 영산암으로 직진합니다정원으로 들어가는 우화루의 아담한 통로를 지나 정면으로 보이는 나한전 앞 정원에는 산당화 아씨 개화를 시작했고 작약은 꽃몽오리 예쁘게 만들고 큰꿩의비름은 꽃을 피우기 위해 연두잎을 만들고 종지나물은 하나 둘 꽃을 피우며 사월을 즐깁니다간간히 새소리에 스치는 바람이 잠시 머물다 떠난 한적한 영산암 정원에 덩그마니 서서 이른 아침에 관심당 우화루 대청마루를 싹싹 빗질하는 스님의 부지런함에 살짝 미소 지으며 사계절이 아름다운 영산암의 무르익어가는 사월을 뇌..

여행 이야기 2024.04.23

제주의 겨울을 찾아서(13) (휴애리 자연생활공원)

2024. 01. 11.제주에서도 드물게 동백꽃과 유채꽃이 한 공간에서 1월부터 3월까지 공존하는, 비록 동백꽃은 전성기를 지나가고, 유채꽃은 막 개화를 시작하는 1월이지만, 3월에 유채꽃은 절정을 맞고, 동백꽃은 겨우 손에 꼽을 정도만 나무에 힘겹게 매달려있지요. 위에는 동백꽃과 아래에는 유채꽃이 빨간색 저고리에 노란색 치마를 입은 아리따운 여인네처럼 휴애리 자연생활공원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휴애리 가기 전, 휴애리 자연생활공원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토종닭 전문 식당에서 황칠토종닭샤부샤부(백숙, 내장볶음, 죽 포함)로 조금 늦은 점심을 즐깁니다.휴애리 입구에서 표를 받는 직원이 유채꽃구경 실컷 하고 오라고 등을 떠밀어, 아직은 꽃이 없는 입구를 지나 유채꽃밭을 향해 잰걸..

제주도 이야기 2024.01.25

상강(霜降)의 명자나무 꽃

어느새 24 절기 중 열여덟 번째 절기인, 서리가 내리고 늦가을로 접어든다는 상강(霜降)에 반갑게 산당화 혹은 아가씨나무라고도 불리는 명자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세월이 하 수상하니, 입춘이 지나면서 아기들 새끼손톱 만하게 꽃 눈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삼월 초분부터 꽃망울이 하나둘 움트기 시작하고, 어쩌다 내려 쌓인 늦깎이 눈 속에서 빨간 속살을 수줍게 보여주는 명자나무 꽃이 열매가 채 노랗게 익어가기도 전에 작은 군락에서 봄보다는 다소 거친 듯 보이는 명자나무 꽃이 계절을 잊고 반년 일찍 찾아왔습니다.봄에 피면 봄꽃이요, 가을에 피면 가을꽃이라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이 순리라고 누군가가 주장한다면, 명자나무 꽃을 봄꽃이자 가을꽃으로 알고 즐기면 그만 이겠지만, 계절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

꽃 이야기 2023.10.24

병산서원의 오월

병산서원의 오월은 담백하지만 고즈넉한 쓸쓸함이 묻어납니다. 병산서원 앞뜰의 산당화는 지고 병산서원 뒤뜰에 수령이 오래된 배롱나무(목백일홍)가 무성하게 초록잎을 매달고 꽃 피울 채비에 여념이 없는 병산서원의 오월은 옛 선비들이 글공부에 열중하던 면학의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낙동강변의 찔레꽃 향기가 병산서원으로 스며 들어와 선비들의 코끝을 자극하니 하던 글공부 잠시 접어두고 하릴없이 낙동강변에 나와 공연히 봄에게 하소연하며 선비의 본분을 찾았겠지요.진입로옆 작은 화단에 모여 옹기종기 피어난 매발톱이 나그네를 흘깃 훔쳐보다가 수줍게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쓸쓸한 병산서원의 오월에 살포시 춘심을 전해줍니다.펄펄 끓는 팔월에나 볼 듯싶었던 강변 풀숲에는 수염패랭이 꽃이 형형색색 낙동강변을 수놓으며 오월의 병산서원..

봄 이야기 2023.05.17

눈비 그친 희뿌연 아침풍경

늦은 밤부터 내리던 비가 새벽녘엔 눈으로 바뀌고 아침나절에는 비가 되어 장미 열매를 적셔줍니다 바짝 마른 산수유 열매가 무엇이 그리 미련이 많아 자식 지켜보는 어미같이 온몸이 부서져라 견디고 노란 산수유 꽃몽우리가 터질 듯 터질 듯 만개할 듯 투박한 외투를 벗습니다 옹기종기 온기를 나누는 비에 젖은 꽃몽우리 무리 점점 색을 내기 시작하고 수줍은 명자아씨 발걸음 종종거리며 다가옵니다 만개할 듯 말 듯 애태우는 청매화꽃몽우리 아씨들 봄을 재촉하는 비를 맞고 막바지 봄마중 단장으로 희뿌연 아침을 보냅니다

봄 이야기 2023.02.11

입춘(立春)의 대명사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떠오르는 이른 아침 나의 斷想

절기상으로는 분명 봄이 왔건만, 아직 봄이라고 하기에는 심술굿은 겨울 한파가 떠날 줄 모르고 기승을 부리니, 몸과 마음으로 체감되는 봄은 아직도 창문 너머 멀치 감치 떨어져 있는 듯합니다. 겨우내 꽃이 핀 채로 봄을 기다리는 장미의 모습을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 일상으로의 복귀를 알리는 예비신호가 다양한 방법으로 알려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산책길에서 마스크를 굳건히 착용한 사람들이 대다수인 것은, 아직도 우리들 마음속에는 코로나19에 대한 경계심이 크기 때문이 아닌가 싶으니, 아직도 한참을 그대로 유지할 듯싶은 겨울장미의 시들은 저 모습이 춘래불사춘의 또 다른 유형으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산수유 열매가 가을을 지나 겨우내 저리 매달려 있으니,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 새 술을 담을 새 부대가 되고 싶은 ..

나의 생각 2023.02.04

명자꽃(산당화) 꽃망울을 보면서 봄을 기다립니다

2023. 01. 29. 아직은 봄이 멀리 있어 보이지만 폭설과 한파가 극성인 한겨울에 붉은빛 봄꽃 중 둘째가라면 서럽고 상아빛 봄꽃 중 둘째가라면 서러울 청순한 명자나무가 꽃망울울 맺고 아가씨나무 다운 풋풋함을 선봬며 아직은 멀리 있는 봄을 기다립니다 장미 못지않은 가시 호위무사가 수줍은 아가씨나무 명자꽃망울 지켜주며 머언 봄을 기다립니다 따스한 겨울 햇살이 겉옷 한 겹 벗겨내면 동백보다 장미보다 빨갛고 복스런 꽃잎 지고지순한 아가씨가 봄을 기다립니다 눈이 시릴 만큼 빨간 명자꽃 사이사이에 상아빛 명자꽃들이 알맞게 섞여 피게 될 명자나무 군락이 아직은 볼품이 없지만 머잖은 입춘에 성질 급한 아가씨나무가 꽃망울을 살짝 터뜨릴 봄을 기다립니다

꽃 이야기 2023.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