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벽련암의 어색한 가을풍경

Chipmunk1 2024. 10. 19. 00:46

2024. 10. 17.

내장산 서래봉 아래 벽련암은 웬만한 사찰에 비해 규모면이나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암자인 것이 의아한 암자임에 틀림이 없지 않나 싶은 아름다운 고찰급의 암자입니다.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가을이 왔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봄과 여름과 가을이 혼재된 듯 보입니다.

진공당 뜰에는 채 지지 않은 철쭉이 미려하게 꽃을 달고 하늘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고,

담장 아래 자주달개비 꽃밭에는 봄에 피었던 꽃이 하나 둘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고, 호리꽃등에 한 마리가 자주달개비꽃을 희롱하고 있으니, 봄이 오나 착각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봄의 전령사 산당화(명자꽃)가 봄이 오고 있다고 빼꼼히 고개를 들고 진공당 뜰에 서있고, 연못을 내려다보고 서있는 여름꽃 꽃무릇이 여전히 참사랑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연못의 연잎 위에는 촉새가, 풀베개(왜모시풀) 위에는 딱새가 봄과 여름과 가을을 혼란스러워하지 않을까 싶은 벽련암의 설익은 가을풍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공당 뜰 잔디 틈바구니에서 기지개를 켜는 진빨간꽃버섯아재비들이 가을이 왔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가을의 붉은 기운을 조금씩 불어넣습니다.

벽련암을 막 벗어난 산속에서 하얀 꽃이 유혹하기에 올라가 보니, 가을을 맞아 피기 시작한 차나무꽃들이 가을이 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벽련암은 아쉬움 속에 봄과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익어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