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늦은 겨울, 봄이 꿈틀거리던 정월 대보름 날, 우연찮게 찾았다가 흠뻑 빠져버렸던 청송 얼음골 인공폭포에, 안동에서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그늘진 산비탈 중간중간이 빙판길인 구불구불 주왕산의 험준한 구비길을 계획도 없이 연말연시를 목전에 두고 또다시 우연히(?) 찾아왔다.
두터운 얼음벽에 가로막혀 시원하게 쏟아내지도 못하고 얼음 틈 사이로 쉴 새 없이 잔 물줄기를 세찬 삭풍에 태워 흩날리는 인공폭포가 만들어낸 얼음왕국의 오묘함에 또다시 푹 빠져든다.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절벽을 기어오르려는 산양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세속의 삶이 살면 살수록 만만하고 살만한 삶이라기보다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답답해지기만 하는, 풀리지 않는 고차방정식이 무한소수처럼 끝도 없이 반복되기에,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그리 보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꽁꽁 얼어버린 빙벽을 무심히 바라보노라면, 마치 절규하는 듯한 뭉크의 일그러진 형상이 연상되고,
무너져 내릴듯한 얼음궁전을 위아래로 팔을 뻗어 지켜내려는 야수가 연상되고,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며 천상으로 승천하려는 용이 용솟음치기 직전 잔뜩 웅크리고 있는 듯한 형상으로 연상되는 것은, 아마도 속세의 번뇌와 근심 걱정을 모두 털어버리고 극락세계로 떠나고 싶은 간절함이 숨어있지 않나 싶다.
천신만고 끝에 얼음 감옥의 창살을 뚫고 탈옥하는 죄수의 몸부림치는 형상을 연상시키고,
이승을 떠난 고개 숙인 영혼들이 날개 달린 저승사자의 안내를 받으며, 저승으로 가는 심사대 앞에서 심판을 간절히 기다리는 형상이 연상된다.
천국으로 가는 투명한 영혼들은 편히 앉아 물 세리머니를 받으며, 밝은 빛줄기를 따라 서서히 승천하고,
이승에서 전생의 업보를 채 덜어내지 못한 가엾은 영혼들은 가시덤불길을 지나 지옥불을 향해 힘겹게 오르는 또 다른 승천이 동시에 일어나는 듯한 불가사의한 형상들이 연상되는 인공폭포가 차가운 공기와 합작으로 만드는 위대한 자연의 신비 앞에 자못 숙연해진다.
얼어붙은 폭포 사이를 뚫고 나오는 세찬 물줄기 소리와 좁은 계곡을 빠져나오려는 바람의 거친 숨소리와 찬연히 비춰주는 온화한 태양빛이 한데 어우러져, 금강산의 만물상을 연상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는 사시사철 냉기가 가득한 청송 얼음골과 인공폭포가 합작한 자연의 오묘함이, 한파가 몰아닥친 세밑에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는 동심의 세계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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