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야기

분당중앙공원의 꽃무릇(석산石蒜)

Chipmunk1 2022. 9. 25. 02:35

세월은 쉬는법이 없이 일정하게 흘러가건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느껴지는것이 삶을 대하는 인간의 변덕임을 잘 알면서도 입 버릇처럼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푸념아닌 푸념을 늘어 놓는다.
붉노랑상사화를 보고 온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3주나 훌쩍 지나버리고 시월이 바로 목전에 와있다.

석산이라고도 부르는 꽃무릇은 간혹 상사화와 혼돈하여 부르기도 하지만, 꽃이 먼저 피고 꽃이 지고 잎이 나는 참사랑이란 꽃말을 지닌 꽃무릇과 잎이 먼저 났다 잎이 떨어진 후에야 꽃이 피는 이루어질수없는 사랑이란 꽃말을 지닌 상사화는 꽃무릇과 생김새도 다르다.
두 꽃의 공통점은 잎이 없는 가느다랗고 곧게 뻗은 줄기에 커다란 꽃이 피어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어차피 꽃과 잎이 서로 만날수 없어 동병상련하는 같은 처지이기에, 꽃무릇을 상사화로 부른다거나 꽃무릇과 상사화를 구별 못하는것은 시시비비를 가릴것은 아니다 싶다. 왜냐하면, 분류학상 꽃무릇과 상사화는 같은 수선화과에 속하고 동시에 상사화속으로 분류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사화도 그렇지만, 꽃무릇도 전국 방방곡곡 군락의 크기는 다르지만, 산사와 수목원등에서도 어렵잖게 만나볼수 있고, 다양한 종류의 상사화와는 달리 적색꽃이 원종인 꽃무릇은 멀리 찾아가지 않더라도 가까이에 있는 분당중앙공원에서 여타 지역의 꽃무릇 군락 못지않기에 매년 이맘때쯤이면 많은 탐방객들로 인해 주차장이 혼잡해서 새벽을 마다않고 달려온다.

물론, 매년 똑같은 장소에서 한가지 꽃만 보는것이 혹자에 따라서는 의아하게 생각할수도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계절꽃에 매료되어 매년 같은 시기, 같은 장소로 동일종의 꽃을 찾아다니는 행복은, 한번 느껴보면 결코 포기할수 없는 삶의 활력소가 된다.

빽빽하게 피어있는 커다란 무리를 보고 있노라면, 붉은 노을이 투영된 꽃무릇 바다가 연상되고, 아직 군락이 널리 퍼지기전 띄엄띄엄 서로 의지하며 정감 넘치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듯한 여유로움으로 다가오는 꽃무릇들은 한층 친근감이 느껴진다.

줄기마다 꽃잎이 나오는 여섯개의 꽃대가 있고, 각각의 꽃에 여섯개의 수술이 가늘고 길게 우아함을 더해주니, 6진법으로 거듭 나는듯, 도합 서른여섯개의 수술이 마치 칼군무를 추다 멈춘듯 싶은 절도있는 자태로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한껏 뽐내고 있다.

꽃무릇 군락을 지나 사계절 내내 멋진 분수가 돋보이는 분당호숫가에는 어느새 감이 노랗게 익어가고, 아직은 파란 모과가 제법 어른 주먹 만하게 커져, 머잖아 은행잎과 더불어 노랗게 익어갈 일만 남은듯, 꽃사과나무에 매달린 빠알간 꽃사과를 쪼아 먹느라 분주한 직박구리는 이리 앉았다 저리 앉았다 날렵하게 분주하고, 날씨 마저도 하릴없이 가을을 품으니, 나는 꼼짝없이 가을 나그네가 되어 가을길을 천천히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