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9•28 아침 나의 단상

Chipmunk1 2019. 9. 28. 08:00

 

세월이 주마등(走馬燈)처럼 흘렀다.

 

625 전쟁이 발발한지 겨우 3일만에 내쥤던 수도 서울을,

고군분투 끝에 3개윌 만인 1950년 9•28.

서울을 다시금 수복한 그날이 바로 69년전 오늘이다.

 

내 아버지는 1951년 1•4 후퇴때

고등학교 2학년 신분으로

인민군에 붙들려 가는걸 피하려,

잠시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소월시인의 진달레꽃 소재지로

잘 알려진 고향땅

평안북도 영변군 팔원면 석성리를

다시 밟아보지 못하고

남쪽 땅에

고단하고 한 맺힌 육신을 맡기신지도

어느덧 스물두해가 흘렀다.

 

돌아가시기 직전 까지도

얼마나 고향이 그리우셨을까?

 

나는 한달에 두어번,

내가 태어나고 초등학교 2학년 까지 자랐던

고향땅 충청남도 공주군 유구면 근처를

언제나 담담하게 스쳐 지나간다.

특별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지 않은것은

언제든 갈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주변을 살펴보면,

내게는 당연하고 대단치 않은 일들이

그 누구엔가 에게는

절실하고 간절한 일이 되기도 한다.

 

태어나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내게는 아주 사소한 일상이되고,

하루에 백리길도 거뜬하게 걷는

내 다리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을

잘 모르고 사는것에 반해서,

 

걸을수 있는 두다리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해 할까?

 

시력이 나쁜 내 눈이

원망스러운적이 꽤 있었다.

 

바다에서 수경을 끼고

바다속 구경을 할때도

시력이 나빠 불만스러워했었고,

추운 겨울날 밖에 있다가

실내로 들어올때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이 잘 안보였던 순간들에 짜증도 났다.

정기적으로 3~40 만원씩 하는

다초점 안경을 구입할때 마다

너무 자주 안경을 바꿔야하는 번거로움과

과도하다 생각되는 구입 비용 때문에

종종 맘이 편치 않았다.

 

그렇지만,

앞이 전혀 안보이는 누군가는

나의 눈과 관련한 불만들이

한낱 배부른 흥정이라 할것만 같다.

 

많이 갖고,

다 가졌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갖고 있는 작고 보잘것 없는 하나하나가

그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고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

 

내 아버지가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고향땅이

내게는 큰 감흥이 없는것 처럼......

 

서울 수복 69주년을 맞는

9월의 마지막 일요일 아침에

나와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든것에 대해,

진심으로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