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올레길 완주 두번째 - 9번 코스로 마무리하다.

Chipmunk1 2017. 11. 6. 22:35

2번째 완주 올레길 9코스에서 피날레(Finale)를 장식하다

 

 

  어제 저녁, 느지막이 전주사는 착하고 듬직한 아우님의 배려로 대평포구에서 조금 떨어진 대평리에 있는 올레풍차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버릇처럼 새벽 4시쯤 눈이 떠져, 동이 트기를 기다리다 못해 다섯시가 조금 넘어, 10분 거리에 있는 대평포구로 해돋이를 볼까하는 마음에서, 아직 어두컴컴한 대평리 버스 종점을 지나, 카페와 펜션이 즐비하게 늘어선 마을길을 따라 포구쪽으로 다가갔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군산에 오르면 멋진 해돋이를 볼 수 있었겠지만, 막연한 생각으로 박수기정 위에 아직도 달이 떠 있는 대평포구 맨 끝으로 가서 동쪽 나지막한 산등성이가 바다와 맞닿은 그 곳을 응시 하면서, 조금씩 불거져 오는 하늘과 산이 맞닿은 해오름길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이따금씩 박수기정도 바라보고, 희미하게 시야에 잡히는 가파도와 송악산과 그너머에 있는 마라도 까지 환상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서서히 떠오르는 해와 뒤편의 박수기정과 중앙의 가파도 앞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어선들과 송악산과 마라도가 눈부신 햇살에 투영되어 좋은 에너지가 사방에 퍼져가고 있었다.  마치 제주 올레길 완주를 목전에 두고 있는 나를 축하해 주려한다는 착각에 깊히 빠져들게 했다.

 

  차돌박이 콩나물국밥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눈을 뜨고 걷기가 힘들 정도로 해가 중천에 뜬 9시가 조금 넘은 늦은 시간에 대평포구의 9코스 시작점을 지나, 박수기정을 오르기 시작했다.

 

  기온이 많이 오른 대평포구의 9코스는 흡사 한여름의, 작렬하는 불같은 태양처럼,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어야 할, 따스해야 할 햇볕이 도를 넘어 출발할 때 입었던 자켓을 벗겼고, 쉬엄 쉬엄 등에 땀이 차면 식히기를 반복하면서, 박수기정에 올라 벤치를 찾아 배낭을 벗어 놓고 여유있는 긴 휴식에 들어갔다. 눈앞에는 가파도와 형제바위가 아련히 보였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방산이 박수기정과 월라봉과 나란히 서서, 대평포구와 화순항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인근 마을에 사시는 듯이 보여지는 어르신이 막 박수기정을 올라 다가오셨다.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외지인들이 대평포구의 땅값을 천정부지로 올려 놨고, 60% 이상의 땅은 외지인의 소유라는 이야기도 하셨다. 

배낭뒤에 귤 몇개를 비상용 간식으로 매달고 다니는걸 보시고는, 무겁게 갖고 다니지 말고 천지가 귤인데, 그때 그때 따 먹으라고 그러신다. 참 고마우신 말씀 이지만 온갖 정성을 다해 키운 귤을 허락없이 따 먹는다는건 죄악이라 생각하기에 그럴 수는 없다 말씀 드리니, 괜찮다 하시면서 근처에 있는 당신의 귤밭에 가는 길이니 같이 가서 따가라고 말씀 하시고는 앞장서서 걸으시며, 그만 쉬고 출발하자 재촉하셨다. 감사의 말씀을 거듭해서 드리고, 인사를 드리고 나는 월라봉을 향해 걷고, 어르신은 밭을 향해 떠나셨다.  헤어질 때는 다음에 꼭 찾아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대평포구에 있는 명물식당을 조카가 운영하고 있으니, 다음에 오면 작은 아버지 찾아왔다하고 꼭 연락하라고 하시고는 손을 흔들고 떠나시려해, 사진 한장 같이 찍고 싶어 청하니, 복장이 시원찮다고 겸연쩍어 하시면서도 흔쾌히 옆에 서 주셨다. 아직까지는 사람사는 훈훈한 정이 넘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했다.

 


  산방산을 바라보며, 제2차세계대전 말에 일본군이, 미군의 화순항 상륙을 저지할 목적으로 월라봉에 흉하게 뚫어놓은 흉물스런 대여섯개에 달하는 굴들을 오른쪽으로 지나며,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일제의 잔재에 심기가 불편한 채로, 산방산이 코앞에 바라보이는 쉼터에서 한동안 산방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월라봉 구비를 돌아 두런두런 사람들의 말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많이 보던 낯익은 남녀가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온다. 다름아닌 제주올레 완주자클럽(이하 '완클') 경기지부의 두 기둥이며 인생의 동반자인 지부장과 총무였다. 짧은 시간안에 경기지부를 완클의 최고 지부로 성장시킨 멋진 부부다. 가까이 살면서도 정기모임이나 번개모임에 한번도 참석을 못했고, 지난 9월의 추자도굴비축제장과 지난주 올레걷기축제장에서, 제주에서만 겨우 두번 만났을 뿐인데도 괘념치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이리 반겨주고, 나의 두번째 완주 마지막 코스를 함께 한다는 사실이 나를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비록 우연이긴 했지만, 반가운 두분과 더불어 월라봉을 내려와서  황개천 상류 언덕에서 부터 계속 따라온 흰둥이 멍멍이도 황개천교를 훨씬 지나도록 축하 행렬에 동참했다.ㅎㅎ

그리고, 화순금빛모래해면에 있는 9코스 종점에 도착해 인증샷을 찍고, 화순시내로 이동해서 한치물회와 전복물회, 그리고 제주막걸리로 완주 축하턱은 정작 지부장이 대신냈다. 

동네 어르신도 그렇고, 지부장 부부도 그렇고, 좋은 분들을 만나 여러모로 복 받은 감사한 날이었다.

 

 

  이렇게 작년 4월 12일, 다시 걷기 시작한 두번째 올레길 걷기의 대단원을 오늘 9코스에서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송악산 아래 여객선 선착장에서 마라도행 마지막 배를 타고 마라도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