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머체왓숲길 봄 날 오후 탐방

Chipmunk1 2025. 3. 31. 00:12

2025. 03. 18.

꽃샘추위가 찾아와 눈이 간헐적으로 내리는 오후, 세복수초 군락이 있다는 머체왓숲길에 도착합니다.

전 날, 사려니숲길에서 휴애리자연생활공원으로 가는 길에 지나쳤던 머체왓숲길은 제주도 방언으로 돌을 의미하는 머체와 밭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 왓의 합성어로 돌밭숲길과 같은 뜻이지만, 바람이 부는 밭이라는 뜻인 제주도 방언 보롬왓과 마찬가지로, 뭔가 그럴듯하고 의미심장하게 낭만적인 이름으로 기억에 남는 듯합니다.

나그네는 6.7Km(2시간 30분)의 돌밭숲길 머체왓숲길과 편백나무, 소나무, 삼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지형이 작은 용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머체왓소롱콧길(6.3Km, 2시간)이 만나는 머체왓움막쉼터에서 서중천전망대로 바로 가지 않고, 소롱콧길인 머체왓편백낭쉼터를 거쳐서 3.3Km에 달하는 순수 머체왓소롱콧길의 일부를 거쳐 서중천전망대로 가는 약 10Km의 머체왓숲길을 탐방하기로 하고 머체왓숲길 입구로 들어섭니다.

쉼 없이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안고, 머체왓숲길 탐방을 반갑게 맞아주는, 소담스럽게 만개한 삼지닥나무 꽃이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에 잔뜩 움츠렸던 나그네와 스산한 날씨에 사랑 가득 온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내심 가득 세복수초 군락지가 어찌 생겼을까 하는 호기심을 안고, 세복수초가 있을법한 야생화길을 향해 바튼 발걸음을 하면서, 두 눈은 세복수초 찾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머체왓숲길은 봄이 왔다고 입증할 만한 세복수초뿐만 아니라, 어떤 봄꽃도 찾을 수가 없었으니, 절로 춘래불사춘을 읊조리며 컸던 기대만큼이나 커버린 실망을 안고 돌밭숲길이 머체왓숲길이라는 사실만 확인한 채로 음습한 야생화길을 지납니다.

머체왓전망대를 지나 청보리새순으로 착각했던 초지를 지나, 세복수초에 대한 서운함을 보상받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동백나무군락지에 들어서 보지만, 숲길에 떨어진 동백꽃이 이따금  눈에 들어올 뿐, 동백나무군락지는 꽃을 다 떠나보낸 허탈한 모습으로, 땅에서 한번 더 핀다는 동백꽃도 흔치 않으니, 동백나무군락지는 시나브로 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내 동백꽃을 따먹으며 봄을 맞은 듯싶은 엉덩이에 눈같이 하얀 털을 가진 얼룩무늬 노루가 나그네를 경계하는 산골처녀 같은 눈빛으로 순식간에 숲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제는 세복수초와 동백꽃을 만나지 못한 서운함을 추스르며, 피톤치드의 보고 편백나무숲길을 무념무상 지나면서 가슴을 활짝 열고, 들숨과 날숨을 크게 하며, 거듭된 실망으로 지쳐버린 심신에 평화와 안정을 얹어봅니다.

숲길 초입부터 시작하여 중간중간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는 파릇파릇한 군중(나도히초미) 군락지가 그나마 생동감 있는 숲길의 유일한 나그네의 봄맞이 친구가 되어줍니다.

어둑어둑해지는 듯 하늘을 가리는 편백낭치유의숲을 넘어 서중천습지를 지나, 머체왓소롱콧길과 본래의 머체왓숲길이 만나는 서중천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서중천숲터널을 벗어나 홀로 걷기에 조금은 호젓했던 10Km 숲길 탐방의 막을 내립니다.

세 시간 전에 출발했던 머체왓숲길 탐방로 입구에 도착하니, 여전히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유유자적 흔들리다 견디지 못하고  짠하게 땅에 떨어지면서도 환하게 웃어주는 삼지닥나무 꽃을 뒤로하면서, '제1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했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인근 주민들에 의해 정성껏 가꾸어 온 머체왓숲길 탐방으로, 세속에 오염되었던 나그네의 심신은 깨끗하게 치유되었으니, 바라건대 내일만큼은 제주에 온 이래로 풍랑 때문에 결항되고 있는 가파도 정기여객선이 정상 운항하기를 학수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