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3. 17.

어느덧 나그네에게 휴애리자연생활공원이라는 곳은 제주에 오면 으레 들러야 하는, 겨울엔 동백꽃과 유채꽃, 봄엔 서향과 유채꽃, 여름엔 수국, 가을엔 핑크뮬리가 매혹적인, 그리고 사시사철 온실에는 수국이 반겨주는 곳이기에, 사려니숲길과 새연교와 서귀포귤림성(숨, 도)과 더불어 별도의 일정이 없어도 반드시 찾게 되는 제주도의 최애 장소가 되었습니다.
지난 12월에도 제주에 온 다음날 찾았던 휴애리 유채꽃밭에는, 손으로 꼽을 만큼 아주 소수의 꽃만 겨우 피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도 지난 12월과 마찬가지로 제주에 온 다음날 사려니숲길과 더불어 눈 덮인 한라산 백록담 남벽 위로 신비로운 뭉게구름이 겹겹이 진을 치고 있는, 비록 꽃샘추위로 기온은 낮아지고, 아직 떠나지 못한 삭풍이 몰아쳐 여린 유채꽃이 잠시도 쉬지 못하고 꺾일 듯이 꺾일 듯이 꺾이지 않고,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마치 노란 파도가 춤을 추듯, 제주도에서 유채꽃밭 단일 면적으로는 가장 넓다는 휴애리자연생활공원에서 완연한 봄을 만났습니다.
휴애리자연생활공원은 오전 9시에 개장하기에 일찍 길을 나서 오다가 들렀던,

가시리 녹산로에는 예로부터 국가의 중요 전략자산 중 하나였던 군마등 최고의 말을 길러냈던 녹산갑마장이 있던 쫄븐갑마장길의 조랑말체험공원과 풍력발전소 사이에 있는, 제주의 빼놓을 수 없는 유채꽃의 성지 중 하나인 가시리 녹산로의 유채꽃광장에는 여리고 어린 유채가 꽃은커녕 꽃망울도 맺지 못하고 있었기에, 꽃샘추위에도 아랑곳없이 겨우내 만개한 휴애리자연생활공원의 유채꽃은 막 절정을 지나고 있으니, 한라산을 중심으로 비슷한 장소에 있는 유채꽃밭의 유채꽃도 미묘한 기후환경의 차이로 만개시점이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 나그네를 흥미롭게 합니다.

작아서 앙증맞아 보이는 유채꽃은 꽃송이를 지탱해 주는 꽃대에 비해 꽃송이가 크기에, 고개를 숙인 듯 겸손해 보이는 모습이 무척이나 애처롭게 보이지만, 군무를 추듯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와도 촘촘히 서서 어깨동무하고 파도타기를 즐기는 아름답고 노란 봄의 물결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스러질 듯 스러질 듯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잠시 흐트러지기는 하지만, 결코 꺾이지 않는 유채꽃의 강인함에, 아무리 짓밟혀도 다시 굳건히 일어서는 들판의 풀과도 같은 민초들에게도 이제 막 절정을 지나고 있는 휴애리자연생활공원의 유채꽃 같은 절정의 순간이 곧 닥칠 것만 같습니다.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노란 물결처럼 보이는 유채꽃을 좀 더 가까이 보면, 수십 개의 개별 꽃송이마다 앙증맞은 꽃잎 네 장과 중앙부에 암술과 수술이 여느 꽃들과 다름없는 구조를 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고 이채롭습니다.

더욱이 여타의 유채꽃밭과는 달리, 크고 작은 열대 야자나무가 키 작은 유채꽃과 조화를 이루고, 한라산 백록담을 흠모하듯 의연하게 서 있는 이국적인 모습은 휴애리자연생활공원에서만 즐길 수 있는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유채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아주 이로운 식물이기에, 살짝 데쳐서 나물로 무쳐서 먹고, 심지어는 꽃까지도 식용으로 쓰일 뿐만 아니라, 유채(油菜)라는 이름이 기름과 나물을 뜻할 정도로 이로운 식물입니다.
평지, 가랏나물과 겨울초라는 순우리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유채라는 한자이름으로 더 알려진 것이 조금은 아쉽기도 하지만, 차후에 평지, 가랏나물, 겨울초 같이 정감 있는 순우리이름으로 더 많이 불려지기를 바라봅니다.
카놀라유로 많이 알려진 유채기름은 유채(Canola)의 포르투갈어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재된 추천 영어명은 rape(레이프)인데, 어원은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강간을 뜻하는 영어 단어 rape와 같은지라 거부감이 들어 영미권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유채꽃을 지칭할 때는 '씨앗(seed)'을 붙여 rapeseed라고 부르는 편으로, 영문 위키에도 rapeseed가 표제어로 되어있기도 합니다.
결국 카놀라유는, rape oil이라는 표현을 쓰기엔 뭐 한지라 다른 줄임말 표현인 '카놀라'가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공교롭게도, 비상용으로 가져온 비니와 바람막이 조끼와 재킷이 유채꽃과 깔맞춤 한 듯 보이지만, 강한 바람을 동반한 꽃샘추위로 인해,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하고 제주의 첫날 나들이가 시작되었는데, 우연찮게 유채꽃 드레스코드가 완성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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