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3. 17.

언제부턴가 으레 제주에 오면 서귀포에 여장을 풀고, 아침에 눈을 뜨면, 비나 눈이 내리지 않는 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원혼들이 아직도 떠돌고 있을 법한, 43 유적지 소낭머리(혹은 소남머리)로 나갑니다.
혹시나 해돋이를 볼 수도 있겠다 싶은 기대 보다도, 소낭머리 공원에서 내려다보는 보목포구와 섶섬이 그립기도 하고, 혹여 아침햇볕이 살짝 비추는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온통 신경을 하늘과 바다에 집중하게 됩니다.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가 온몸을 꼭꼭 싸매게 했지만, 어슴프레 여명이 밝아오는 소낭머리 전망대에서 모든 걸 잊은 채로 무념무상의 시간을 보냅니다.

극심하게 소용돌이치는 사바세계처럼 보목포구 하늘에는 먹구름과 아침해가 한바탕 결전을 벌이는가 싶더니, 아침해가 먹구름 틈바구니에서 살포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고맙게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아침해가 근래 보기 드문 해맑은 모습으로 보목포구 하늘을 밝히는가 싶더니, 먹구름의 집요한 훼방으로 인해, 몇 번의 고비를 잘 견뎌내고, 먹구름 보다 빠를 움직임으로 중천을 향해 솟아오릅니다.

비록, 먹구름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저렇듯 찬연히 보목포구의 아침을 밝히는 태양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도 언젠가는 정의로운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리라 믿으며, 제주에서의 첫날을 소낭머리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해돋이와 함께 기분 좋게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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