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한라수목원의 봄 스케치

Chipmunk1 2025. 3. 19. 04:25

2025. 03. 16.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서귀포 중문으로 넘어가는 한라산을 관통하는 1100 도로가 시작되는 제주시 연동의 한라수목원이 궁금하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치 한겨울 같은 어스름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습관처럼 한달음에 달려가곤 합니다.

비록, 임업시험연구실 뒷동산 애기동백꽃은 녹색 이파리만 무성한 채 거진 다 지고 없지만, 화목원의 카네이션동백꽃은 봄의 절정을 향해 화려하고 풍만한 자태로 한라수목원의 봄을 주도하려는 듯, 꽃샘추위가 막 시작되는 첫날, 아직도 피고 지고를 멈출 줄 모르고 있습니다.

화목원을 지나 온실 가까운 주차장 아래 정원에서 화려하게 만개한 청매화를 배경으로, 예로부터 한지의 재료로 기꺼이 껍질을 내어놓던, 가지 끝이 세 갈래로 나뉘어 가지마다 노란색 꽃을 활짝 피운 삼지닥나무가 수목원의 봄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맞이합니다'라는 꽃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삼지닥나무가 겨우내 개화를 준비하여, 봄을 맞이하는 기다림이 마침내 결실을 맺으니, 막 시작된 꽃샘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봄은 삼지닥나무 곁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 태세입니다.

삼지닥나무의 뒷배가 되어주던 빨간 애기동백꽃과 순백의 왜 동백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동백나무 틈바구니 사이에는 만첩매화 같기도 하고, 옅은 만첩홍도화 같기도 한 화려함이 도를 넘은 듯한 분홍의 복사앵도나무가 만개하여, 봄의 적정자는 삼지닥나무 꽃이  아닌, 자신이라고 복숭아나무와 세종대왕이 즐겨 드셨다는 앵도가 열리는 앵도나무가 자연에서 눈이 맞아 사랑에 빠져 탄생한 복사앵도나무는 꽃이 지고, 복숭아가 익어가는 여름에  복숭아와 비슷한 열매를 맺는데, 꽃이 화려한 반면에 맛은 별로라고는 하지만, 먹을 수는 있다 하니, 혹시 올여름에 제주에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나무에서 자연스럽게 익어 떨어진 열매 하나 주워 맛보고 싶은 열망이 더해갑니다.

커다란 나무 아래 간간이 눈에 들어오는 세복수초를 압도하는 노랑수선화 군락이 봄의 또 다른 모습으로 겨우내 썰렁하던 수목원의 빈 터를 빠르게 채워 나가기 시작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동백꽃과도 잘 어울리는, 이른 봄 꽃이 피면 매화나무라 불리고, 매화가 떨어지고 매실이 열리면 매실나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청매가 한라수목원의 봄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 우아하고 넉넉한 모습으로 사바세계에 완전한 봄이 올 때까지는 봄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수목원에 봄이 오래도록 머물게 할 것만 같습니다.

다만, 한라수목원의 홍매는 아직 필 준비가 채 되지 않았는지, 개화를 급히 서둘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어쩌면, 이 땅에 진정한 봄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