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31.
이틀 전 동그랗고 휘영청 밝았던 보름달이 시월의 마지막날 초저녁에도 여전히 밝게 서귀포항 위로 떠오르고, 한여름 같으면 어둠이 서서히 내리 깔리기 시작하는 저녁 여덟 시 즈음, 새연교는 캄캄한 밤이 되어 음악분수쇼를 시작합니다.
음악분수쇼가 막 시작된 새연교를 건너 새연교와 음악분수를 한 덩어리로 묶어 감상하기 좋은 명당을 찾아 새섬으로 잰걸음으로 내려갑니다.
이윽고, 찾아낸 명당에 선 채로 새연교와 음악분수와 한데 어우러져 어깨를 들썩이며 시월의 마지막 밤을 까맣게 불태우기 시작합니다.
어느덧, 음악분수쇼는 제주에 도착해서부터 자주 듣게 되는 윤하의 노래 "사건의 지평선"이 제법 새연교의 가을밤과 잘 어울리며 클라이맥스를 넘습니다.
그리고, 음악분수쇼의 마지막곡이 잔잔하게 흐르면서 시월의 마지막 밤이 깊어가고, 새연교에 유유자적 서서 달이 떠나간 서귀포항 여객 터미널 부두를 바라보며 내년에 다시 만나게 될 시월의 마지막 밤을 미련 없이 보내려 합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몇백 년을 살 것 같이 삶에 자신을 하며 호기롭게 살아가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한낱 미생물도 이겨내지 못하는 자연 중에서 제일 나약한 존재중의 하나인 인간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살아생전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를 누군가가 가슴을 아리게 하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 왠지 서글퍼 보이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년 습관처럼 찾아왔다 지나가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 누군가에게는 자칫 마지막 밤이 될 수도 있음에 자못 숙연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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