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첫해인 1989년에 생애 첫 여권을 만들었습니다.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해외여행 자유화와 첫 여권의 인과 관계는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미국 오하이오 주의 작은 도시 랭커스터에 본사가 있던 다국적기업의 한국 내 현지법인에서 근무할 때였었는데,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격동의 80년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천일 전부터 광화문 네거리에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까지 남은 날짜를 카운트다운 하는 대형 조형물이 있었고, 이를 뿌듯하게 바라보며 출퇴근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사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네요.
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역사적인 민주화 운동이 꽃다운 학생들의 희생이 도화선이 되어 근로자들 까지 동참하는, 그래서 최루탄 가스에 눈물 흘리면서, 이민을 가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겪은 끝에 1987년 6월 29일, 드디어 당시 집권여당의 실질적인 위정자들로부터 대통령선거 직선제 개헌등이 주요 골자인 항복서(629 선언)를 받아낸 역사적인 민주화운동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으니, 오랜 독재 정권하에서 짓눌렸던 노동자들의 급진적인 처우개선 요구가 급격한 임금 인상으로 이어졌고, 임금 인상은 곧바로 인플레이션의 주범이 되어, 80년대 들어 파격적인 각종 세제혜택을 부여해 유치했던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들이 폭등하는 인건비와 임차료등 감당하기 힘든 격변기의 원가 상승 충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제조업을 중심으로 중국등 가격 경쟁력이 있는 주변국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나그네가 다니던 회사도 중국으로 철수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시점이, 미국 출장을 앞두고 여권을 만들었었던 1989년 말경이었고, 그로부터 일 년 후인 1990년 말에 국내 사업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중국으로 철수했으니, 1989년에 만든 생애 첫 여권의 쓰임은 1991년 초부터 새로 근무하게 되었던, 당시 홍콩에 아시아 지역본부를 두고 있었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중심 산타클라라에 기반을 두었던 다국적기업의 한국 내 현지법인에서 여권을 만든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더랬습니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던 홍콩출장에 얽힌 에피소드와 당시에는 해외여행 자유화가 올림픽 이후 늘어나기 시작한 해외 교류에 발맞춰서 일반 국민들도 편리하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는 했지만,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특별한 수고도 있었으니, 이를 필두로 많이 흐트러진 기억 조각들이 더 이상 사라지기 전에 모으고 모아서 까마득히 아련해진 추억의 퍼즐을 하나씩 하나씩 맞춰 나아가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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