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일반여권(복수)의 유효기간이 10년이지만, 첫 여권부터 다섯 번째 여권을 발급받았던 2008년에도 유효기간이 5년이었고, 2010년에 발급받았던 여섯 번째 여권의 유효기간이 10년인 것으로 유추해 볼 때, 2010년경부터 유효기간이 현재의 10년으로 늘어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은 일정 금액 내의 외국 통화는 주변 은행에서 별도의 절차 없이도 얼마든지 환전이 가능하지만, 그때는 여권과 항공권이 있어야 환전이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환전필 도장도 찍고 환전영수증을 여권에 스테이플러로 찍어주는 친절(?)함도 있었답니다.
여권의 쓰임새가 참 다양했었지요.
그리고, 장충동의 남산 자락에 있는 한국반공연맹(현 한국자유총연맹)에 가서 해외여행사전교육(반공교육)을 이수해야만 했고, 남자라는 이유로 출입국 병무 신고를 해야만 김포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출국심사를 통과해서 비행기 탑승이 가능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25세 이상의 병역미필자나 병역의무자등은 병무신고를 해야 하지만, 1992년 9월까지 여권에 스탬프가 찍혀있는 것으로 봐서는, 남성들은 병역의무이행 여부와는 무관하게 일정연령 까지는 예외 없이 출입국시 병무신고를 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해외 한번 나가기가 꽤 복잡했는데, 그때는 복잡하다는 생각은 못하고 해외 나가려면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별 불만 없이 성실하게 절차를 밟았었지 싶습니다.
지금은 여권에 출국심사필 도장과 입국심사필 도장만 찍히지만, 그때는 생뚱맞게도 동사무소에 귀국신고를 하고 귀국신고필 도장을 받고, 생애 첫 해외여행의 전 과정을 최종 마무리 했지 싶습니다.
그렇게, 나그네는 1991년 4월 14일부터 20일까지 6박 7일간 생애 첫 해외여행을 홍콩으로 무사히 잘 다녀왔더랬습니다.
물론, 업무출장여행이었기에, 김포공항을 출발해서 홍콩에 도착해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던 것까지만 기억날 뿐,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봤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으니, 세월의 무상함에 쓴웃음이 지어집니다.
만일,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별생각 없이 여권들을 파기해서 버렸더라면, 세월 속에 흩어진 조각 기억들을 모으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 오랜 세월을 서랍 속에서 조용히 기다려준 빛바랜 여권들이 나그네를 흐뭇하게 합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니 혹은 '구관이 명관'이니 하는 옛것을 소중히 여기자는 취지의 교훈들도 있지만, 쓸모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구여권들이, 나그네에게 지나온 시류와 역사의 발자취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되새김질할 수 있게 도와준 특급 도우미로 거듭났습니다.
안타깝게도,
세월이 흐르면 더 이상 추억을 쌓지 못하고,
쟁여놨던 추억을 파먹고 살게 될 날이 돌아오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그네는 주어진 유한한 삶의 울타리 안에서,
언젠가는 파먹고 살게 될 멋진 추억들을
알차게 차곡차곡 쟁여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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