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5. 06.
천삼백여 년의 긴 세월 속에 대웅전(국보 311호)을 비롯해서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가장 오래된 극락전(국보 15호, 두 번째 오래된 목조건물은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등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한 안동 천등산의 봉정사는 법주사, 통도사, 대흥사, 선암사, 마곡사, 부석사등 세계유산에 등재된 나머지 6개 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담한 산사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나, 고금당과 범종각과 석조여래좌상, 그리고 삼성각 등 오랜 세월을 지켜낸 불교 유산들 또한 잘 간직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개축 공사가 마무리되면 얼마나 멋진 모습으로 재탄생될지 자못 궁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등 유독 유교의 전통이 깊은 서원들이 즐비한 안동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사찰이라고 합니다.
만세루를 통과해 대웅전에 갔다가 극락전까지 둘러보고, 나가는 길에 들렀던 영산암은 '한국의 10대 정원'에 선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작년 가을 공사가 막 시작되어 많은 아쉬움이 있었기에, 제일 먼저 찾았으나, 공사 규모는 훨씬 더 커졌고, 뒤편으로 돌아가 봤지만, 고개를 푹 숙이고 비를 맞고 있는 모란 서너 송이가 빗속에서도 당당하게 반겨주니, 공사로 출입금지된, 눈 둘 곳 없는 정원이 있던 곳을 상상으로 느끼고, 공사장과 맞닥뜨린 불두화가 매우 불편해하는 뒤뜰에는, 산에서 막 내려온, 나보다는 훨씬 불심이 깊어 보이는 듯싶은 복두꺼비가 공사 진척 상황을 확인하려는 듯 서성거리는 모습을 호기심에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얼른 공사가 끝나서 멋진 정원으로 재탄생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며 영산암 돌계단을 내려와, 석탄일 준비로 연등이 즐비한 대웅전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대웅전 계단 오른쪽에는 봉삼이라고도 불리는 백선이 하늘하늘 빗속에서 만개한 채로 산사의 봄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대웅전 계단 왼편에는 사나운 비에 흠뻑 젖은 채로 꽃잎을 하나둘씩 보시하고 있는 모란의 순결한 자태가 깊어가는 산사의 봄을 안타깝다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대웅전과 나란하게 왼쪽에 자리한 극락전 앞에는 막 피기 시작한 작약이 산사와 제법 잘 어울립니다.
뜻밖에도 극락전 앞을 넓게 차지하고 있는 매발톱 꽃의 보랏빛 색감에서 승려들의 법복 색과 묘한 일치감이 느껴집니다.
뿐만 아니라, 황금빛 매발톱 꽃에서는 찬연하게 빛나는 불상이 연상되어, 매발톱 꽃이 산사의 봄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상상의 세계에 빠져봅니다.
거기에 더해, 영롱한 금낭화가 머잖은 석가탄신일을 축하하는 연등과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다다르니, 삼라만상이 무엇하나 헛되게 태어남이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보랏빛/황금빛 매발톱과 금낭화의 콜라보레이션은 산사의 봄과 천상의 궁합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대웅전이 있는 경내 벽 한편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봉정사를 방문했던 1999년 4월의 봄을 아직도 기억하고자 벽보처럼 사진을 붙여놓았고, 작년 가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추모하는 사진들을 만세루에 전시하여, 먼 나라 여왕과의 인연조차도 귀하게 여기는 일 또한 부처의 가르침이 아닌가 싶은 혼자만의 생각으로 봄비가 계속되는 봉정사를 뒤돌아 나오면서, 담장 위에 걸쳐져 있는 불두화는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자 하는 불제자들의 속세를 떠난 마음을 담기보다는 세상과의 작은 인연도 귀히 여기라는 부처의 가르침을 담고 있지 않나 싶은 정화된 마음으로 나그네는 새벽 일찍 떠났던 속세로 되돌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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