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야기

현호색(玄胡索)과 세 번의 짜릿한 조우(遭遇)를 경험한 나의 단상(斷想)

Chipmunk1 2023. 5. 3. 02:48

봄의 전령사로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현호색과의 첫 번째 조우(遭遇)는, 이년 전 이월 중순경쯤 오산의 물향기 수목원에서 복수초와 설강화를 찾다가, 우연히 보라색 현호색을 만나 반갑기보다는 신기했던 기억이 기분 좋은 추억이 되어, 지난 이월 중순 다시 찾은 물향기수목원에서는 아쉽게도 현호색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현호색과의 두 번째 조우(遭遇)는, 지난 삼월 하순경 한라산 1100로 제주시와 인접한 휴게소 공중화장실 옆 공터에서 비에 잔뜩 젖어 힘겨워하던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역시나 신기함을 뛰어넘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이기에, 봄비를 맞아가며 힘겹게 눈맞춤 했던 기억이 새롭다.

현호색과의 세 번째 조우(遭遇)는, 지난주 비 내리는 정선의 만항재에서 띄엄띄엄 보이다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비에 젖어 야리야리한 보라색 현호색을 한눈에 알아보고, 자동발사되는 미소와 더불어 짜릿한 희열을 맛보았다.

예상하지 못했기에 마음에 준비도 찾는 노력도 없이, 갑자기 눈앞에 닥친 현호색과의 우연한 만남 세 번이, 앞으로는 현호색을 타깃으로 한 여행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연(偶然)이 필연(必然)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 부턴가 산책길에서 풀숲을 만나면 으레 현호색이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부푼 희망에 무의식 중에 풀숲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현호색이 눈에 들어오면 지체 없이 풀숲에 들어가 현호색을 빠짐없이 담아서 고이고이 보관하는, 현호색을 짝사랑하는 습관이 생겼다.

서양 사람들은 현호색의 꽃 모양이 마치 종달새 머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속명을 그리스어로 종달새를 뜻하는 코리달리스(Corydalis)로 지었다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현호색(玄胡索)이란 이름은 씨앗이 검은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같은 꽃을 보고도 이처럼 전혀 상관없는 뜻의 이름을 붙여 부른다는 사실이 일면 재밌기도 하면서, 씨앗을 보고 이름을 붙이기보다는 꽃의 생김새를 보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보물주머니 혹은 비밀이라는 꽃말은 현호색의 모양에서 풍기는 느낌을 사실적으로 잘 표현한 듯싶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어릴 적 책상서랍 안쪽에 감춰뒀던 나만의 보물이 있었고, 그 보물이 있던 책상서랍 안쪽은 나만의 비밀 창고이기도 했다.

문득,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보물주머니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있고 어디에 감춰두고 있으며,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에 온통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져 있는 듯싶은 나에게도 세상에 공개하고 싶지 않은 나만의 비밀이 있긴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