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 9

첫눈이 그친 뒤, 내장사 단풍터널 위에서 녹아내리는 잔설(殘雪)의 차가운 눈 물을 맞으며 상념에 잠겨 봅니다.

2024. 11. 29.삼일 동안 간헐적으로 내린 첫눈이 그친 아침, 내장사 일주문을 지나 단풍터널 속으로, 아직은 가을의 온화한 기온에 잔설이 녹아내리는, 차가운 눈 물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잠시 상념에 잠겨봅니다.마치 속세를 벗어나는 듯 일주문에 들어서면서, 몇몇 무도한 기득권자들로 인해 탐욕과 불의와 반목이 만연해진 이 세상을 서로 아끼고 사랑으로 치유하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고 싶은 간절함을 담은 노래를 음미하면서, 내가 그렇게 살아왔듯이 내 아이들도, 탐욕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부자의 삶을 살기보다는, 전쟁 없는 세상에서 소박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해 봅니다.단풍터널에 가득 쌓였던 눈이 얼어붙지 않고, 모두 녹아서 물이 되어 땅에 떨어져 계곡을 따라 강줄기를 따라 바다에서 하나로 만나듯, 우리도 그..

여행 이야기 2024.12.11

백암산 백양사 단풍 현황(3)

2024. 11. 04.2024년 11월 4일 현재, 백양사의 애기단풍은 아직도 붉게 물든 아이들 보다는 파릇파릇한 아이들이 훨씬 많습니다. 비율로 표시한다면, 애기단풍은 20% 미만만 붉은 기운을 보일뿐, 아마도 앞으로 일주일 내지 열흘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백양사 일주문 전 도로 단풍 터널의 애기단풍은 15%를 넘지 못하지 않나 싶습니다. 일광정 앞 작은 호수 둘레길의 애기단풍은 5~10% 정도만 붉게 물드는 정도지만, 은행잎과 다른 나뭇잎은 농염하게 단풍이 들어 볼만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은행잎과 다른 나뭇잎이 거의 땅에 떨어져 하나 둘 자취를 감출 무렵 애기단풍은 제대로 붉어질 듯싶습니다. 애기단풍은 언제나처럼, 천상천하 유아독존인양 홀로 가는 가을을 즐기려나 봅니다. 백양사의 애기단풍..

여행 이야기 2024.11.05

내장사는 가을 앓이 중

2024. 09. 29.한 달 정도 늦게 핀 여름꽃 지각쟁이 백양꽃(내장사에서는 내장상사화라 함)들이 단풍 터널길가에 다소곳이 가을의 서늘함에 떨고 있습니다.제주상사화가 서있던 자리에는 꽃무릇이 천하를 호령합니다.천왕문 앞 연못에는 절정기를 막 넘기고,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꽃무릇이 천왕문을 바라보며 천상에 가기 전 마지막 삶을 불태우고 있습니다.대웅전 중건이 시작되어 조금 어수선해 보이는 경내에서 바라보는 가을하늘이 오늘도 눈이 시리도록 파랬고, 그 정갈함이 속세에서 답답해진 가슴을 뻥 뚫리게 합니다.성급한 애기단풍이 조금씩 물들어가는 내장산의 가을은 정점을 향해 달려갑니다.일주문을 지나서 단풍터널이 조금씩 붉어지면, 내장사의 대웅전도 조금씩 제모습을 찾아가고 있겠지요.

여행 이야기 2024.10.07

고창 선운사 꽃무릇

2024. 09. 30.예년 같았으면, 꽃무릇이 절정에서 내리막길로 줄달음칠 9월 말이지만, 지긋지긋했던 폭염이 꽃무릇의 가을을 가로막는 바람에 진정한 가을이 시작된 지 오래지 않기에, 정직한 꽃무릇은 거짓 없이 해의 길이와 기온에 순응하여, 달력 기준 조금 늦게 개화하여 축제 일정에 맞춰 꽃무릇을 보러 온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햇볕이 강하면 스마트폰으로 꽃무릇의 정열적인 색감을 제대로 구현하기에 한계가 있고, 추분이 지나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기에, 선운사에 해돋이가 시작될 무렵 햇볕이 거의 없는 한적한 선운산 생태숲의 소나무 아래서 일 년 만에 꽃무릇과 재회의 기쁨을 맛보고, 해가 떠오르기 전에 일주문 일대의 광활한 꽃무릇 군락으로 가기 위해 잰걸음으로 일주문으로 향합니다.산사의 해돋이가 본..

여행 이야기 2024.10.03

사월 초파일 사흗날 백양사

2024. 05. 17.석가탄신 봉축일이 이틀지난 백양사는 일주문을 지나면서 백양사로 가는길목 대웅전은 물론이고 팔층석탑 화려하니 천상천하 유아독존 모든시름 내려놓네백학봉의 정기받은 백양사의 입석표지일광정앞 약수호수 백학봉을 반영하고백양사의 랜드마크 쌍계루는 녹음지네석가모니 쉬어가던 보리수가 융성하고청운당앞 작은연못 백학봉과 붉은인동일맥현상 대나무에 영롱하게 아침맺고고불매의 담장아래 해당화가 반색하고아침햇살 듬뿍받는 고불매가 창연하네

여행 이야기 2024.06.04

모악산 금산사의 봄

2024. 03. 27.시원하게 펼쳐진 모악산 계곡을 지나 잘 정돈된 개나리 길을 따라 무념무상 모악산 천년고찰 금산사의 봄을 찾아 목련이 성글게 이어진 산책로를 지나 계곡 위 다리 건너 천왕문을 지납니다사방이 툭 터진 천왕문과 선제루 사이 너른 광장이 끝나는 선제루 왼쪽에는 기대에 부응하듯 탐스러운 백목련이 아니 목련이 금산사의 봄을 알립니다선제루를 바라보며 의연하게 서있는 함박 핀 키다리 목련의 그윽한 눈빛이 목련 꽃피기를 학수고대하던 속세의 오염된 영혼들의 권모술수와 탐욕을 잠재우고 은은한 향기로 다독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두 번 다시 탐욕과 정쟁을 위해 목련뿐만 아니라 순수한 꽃과 자연이 소환되지 않기를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니 헛되다 해도 자연만은 꽃만은 그러하지 않습니다하늘을 우러러 한..

봄 이야기 2024.04.09

입춘을 바라보는 내장사의 겨울 풍경

2024. 01. 30.언제부턴가 내장사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 앞 다리를 건너기 전, "부모님 은혜"라는 내장사 대우 스님의 시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시간을 즐기곤 합니다.지난주 내내 폭설로 몸살을 앓던 내장산 일대였는데, 주말 내내 화창했던 날씨가 눈을 많이 녹게 했고, 생각 외로 우화정 옆에 주차를 하고 내장사로 가는 길은, 아이젠과 스패츠도 준비해 갔건만, 기온도 적당하고 눈도 적당해서 장비 없이 상쾌하게 걷기에 안성맞춤입니다.일주문을 지나 눈이 거의 녹은 쭉 뻗은 단풍 터널길을 지나니, 천왕문이 반갑게 맞아주고, 천왕문 안 왼쪽에 꽁꽁 얼어붙은 연못은 풍수지리에 의거 화기를 막기 위해 조선시대에 조성되었다 전해지지만 화재는 그 뒤로도 625 전쟁과 ..

여행 이야기 2024.02.11

내장산 우화정과 내장사에 2023년을 맡기고, 2024년 새해를 맞으러 갑니다.

2023. 12. 30.이제는 2023년과 작별을 나눌 시간입니다. 마지막 날 갔었던 작년과는 달리 하루 일찍, 내장산국립공원의 우화정과 내장사에 가는 해를 잘 맡겨 놓으러 갔습니다. 우화정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가 돋아날까 싶어 무작정 우화정으로 달려가 용을 쓰며 홀로 송년회를 해보지만, 날개는커녕 눈길에 살짝 미끄러지며, 중심을 잡으려 땅바닥을 짚은 왼쪽 팔에 통증이 몰려옵니다.일주문을 지나, 눈이 거의 쌓이지 않은 내장사 가는 길의, 겨울 답지 않은 낯선 풍경에 어리둥절하며, 잠깐 사이 천왕문을 지나 정혜루도 지나 경내로 들어섭니다.여전히 수년 전 어이없게 화마가 앗아간 대웅전 자리에는 창고 같은 임시 글씨만 큰 법당인 대웅전을 대신하는 자그마한 법당이 나그네를 슬프게 합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겨울 이야기 2023.12.31

선운사의 가을풍경 스케치

2023. 09. 22.어느덧 추분이 하루 앞으로 바짝 다가온 새벽 4시를 막 지나면서 용서고속도로 오산 방향 서수지 톨게이트를 통과, 장장 238km의 선운사 가는 여정을 3시간 가까이 경부, 천안논산, 당진평택, 서천공주, 그리고 호남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렸지만, 서천공주고속도로 청양을 지나면서 하얀 소복차림의 구미호라도 금방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은 으스스하고 음산한 짙은 안개가 군산에 이르러 자동차 백밀러에 발갛게 동이 트는 하늘이 눈에 들어오기까지 이어져 잠시 속도를 늦췄을 뿐, 시속 110km로 정속 주행하면서, 지금은 투병 중인 가수 방실이(서울시스터즈)가 불렀던 가요 "첫차"의 첫 소절을 무의식 적으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흥얼거립니다. "새벽안개 헤치며 달려가는 첫차에 몸을 싣고 꿈도 싣고..

여행 이야기 2023.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