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인제군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에서 눈과 함께하는 이월 첫날의 겨울풍경

Chipmunk1 2023. 2. 2. 10:30

2023. 02. 01.

세월이 유수(流水)와도 같다더니, 엊그제 왔었던 것 같은 강원도 인제군의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정확히 일 년 하고도 십일일 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새벽 여섯 시에 출발해서 아직은 칠흑같이 어둡지만 추억이 많은 광주 퇴촌을 지나 양평과 홍천을 거쳐 세 시간여 만에 원대리 자작나무숲에 도착해 여유 있게 근처 식당에서 황태구이와 청국장으로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이젠을 장착한 후에 서서히 자작나무숲을 향해 마침맞게 눈이 쌓여있는 반가운 길을 오전 열 시를 막 넘기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월요일과 화요일엔 휴장을 하는 자작나무숲을 찾아온 이월 첫날은 마침 수요일이기에 이틀 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없었던, 거기에 더해 어제 오후부터는 감미료 같은 눈이 살짝 내려와 지난 발자국들을 덮고 있어 미세먼지가 조금 짙어졌다지만, 마스크를 시원하게 벗어던지고, 자작나무숲이 미세먼지를 정화시켜 주리라는 굳센 믿음으로 상큼하고 무념무상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햇살이 숨바꼭질하는 자작나무숲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행복한 트레킹을 이어 갑니다.

전망대에 올라 잠시 숨을 고르고, 눈앞에 펼쳐진 자작나무숲을 내려다보니, 속세의 일들이 까마득하게 잊히고 복잡했던 머릿속이 하얗게 정리되는 듯합니다.

자작나무숲 중앙입구에 세워진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조형물과 지난번엔 보이지 않았던 운치 있는 시비에 기대어, 비록 미세먼지를 뚫고 오긴 했어도 오길 잘했다는 뿌듯함에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습니다.

조금 가파른 임도를 오르던 대부분 사람들이 자작나무숲 안으로 사라지고, 산상을 향해가는 임도에는 더 이상 나무데크길도 없고, 막바지 가파른 길 위에 자동차가 지나갔던 흔적과 크고 작은 짐승들의 발자국만 선명한데, 거친 바람소리가 아직도 겨울임을 강조하려는 듯싶습니다.

산상에는 식재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자작나무 어린 묘목들이 띄엄띄엄 추위에 떨고 있고, 자작나무숲 건너 보이는 첩첩산들과 깨끗한 하늘과 한가로운 뭉게구름이 자작나무숲을 내려가는 경유지 달맞이숲으로 가라 합니다.

달맞이숲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사람의 발자국 흔적도 거의 보이질 않았고, 쌓인 눈의 높이도 점점 더해가는 처음 밟히는듯한 오솔길에서 나뭇가지에 걸릴 보름달을 상상하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속세의 감성이 되살아나 잔뜩 웅크리고 메말라진 가슴을 잠시나마 요동치게 합니다.

마침내 산상 오솔길을 지나 자작나무숲으로 천천히 진입하여 서서히 숲 속 깊이 그림 같은 하늘과 하늘을 찌른듯한 자작나무의 곧게 뻗은 늘씬한 각선미 곁으로 다가갑니다.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코자 곳곳이 막혀있는 숲길을 사방팔방 열심히 발품을 팔면서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이따금씩 올려다보노라니, 세시간여 짧은 자작나무숲과의 만남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서서히 다가옵니다.

자작나무숲이 서서히 시야에서 멀어질 즈음, 자작나무숲을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소나무가 자작나무숲을 감싸 안듯 내려다보고, 올라갈 때는 경사도 심하지 않았다고 느껴졌던 짧았었던 길이, 내려올 때는 어찌나 길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던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아이젠을 벗고 나니 자작나무숲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또 다른 추억으로 남습니다.

자작나무숲으로 가던 길은 결코 짧은 길도 아니었고, 어린아이들은 어른 등에 업혀서 오를 정도로 적당히 경사가 있는 눈길이었지만, 거의 휴식할 생각도 못하고 씩씩하게 올라갔었던 것은, 지난 일월 중순경부터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뤘던 자작나무숲과의 만남을 이룰 수 있다는 설렘이 몸과 마음을 역동적으로 만들어 그랬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려올 땐, 올라갈 때와 똑같은 길이 한층 지루하고 길고 가파르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도 자작나무숲을 만나고 온 후유증이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찌 보면,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뭔가 작은 희망이라도 품고 사는 삶은 빨리 그 희망으로 다가가고 싶은 설렘에 크고 작은 힘든 과정들도 힘든 줄 모르고 감내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에,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지 못해 사는 하루하루의 그저 그런 소외된 삶은 지루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일들조차도 짜증스럽고 부정적으로 인지되는 서글픈 삶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게만 느껴질 집에 돌아가는 길을 위로하고자, 자작나무숲을 지나 동쪽으로 5km 남짓 식당이 있을만하지 않은 깊은 골짜기에 떨어져 있는 정갈한 맛집(로즈마리가든)에서 아침식사(춘심이네)와는 차원이 다른 황태구이와 돌솥밥과 환상적인 밑반찬으로 만족스러운 점저를 마치고, 퇴근 시간과 겹친 정감 있는 도로를 네시간여 달려서 열세 시간 동안의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의 겨울 막바지 탐방을 무탈하고 행복하게 마치며 이월을 차분하게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