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제주도의 폭설이 트라우마가 된 지난 기억을 소환한 기시감(旣視感, Déjà Vu 데자뷔)같은 현상을 온몸으로 느낀 주말을 보낸 나의 단상

Chipmunk1 2022. 12. 19. 07:55

처음 겪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겪었었던 일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을 기시감 혹은 흔히 데쟈뷰 현상이라고 하는데, 지난 주말 제주 공항이 폭설과 강풍으로 거의 전 노선이 결항 되어 관광객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고, 숙소를 구하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는 뉴스가 시간마다 들려오면서,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6년 11개월 전 쯤, 그러니까 2016년 1월 23일이 소환되어,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않은 추억이 슬그머니 되살아났다.

이른 아침부터 강풍이 불고 폭설이 내리는 고내포구를 출발해서 광령1리 사무소 까지 가는 (역)올레길 16코스에는 평소와 달리 지나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강풍이 부는 반대 방향으로 얼굴을 돌리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해안길을 지나 아이젠도 없이 산길을 지나고 있었는데, 어찌나 눈이 많이 내리던지, 발목위 까지 눈이 차오르는 길을 걸어가는 눈사람이 되어, 인적도 끊긴 한적한 들판에서 사라진 길도 내 발자욱으로 새로이 만들어 가며 추운줄도 모르고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인 광령1리 사무소 까지, 평소 4~5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8시간 이상 젖먹던 힘을 다해 눈과 강풍과 씨름을 하면서 걸어야했다.

다행히도 고내포구를 지나면서 같은 방향의 올레꾼을 만나 서로 의지하면서, 그 상황에서도 나름 포즈를 취하며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목이 마르면 눈속에 파묻힌 귤도 따먹어 가면서 전쟁터에서의 전우애를 한껏 느끼며 함께했다.

35년만의 폭설로 제주도 전역이 난리가 나 있었고, 차량들이 눈으로 뒤덮혀 있는 도로위에서 서로 뒤엉켜 꼼짝도 못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아수라(阿修羅)들이 들끓는 전쟁통에서 서로 대적하고 있는 듯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뒤이어 도착한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결항되었다는 핸드폰 문자를 보고, 황급히 뉴스를 검색해 보니, 지금 제주도는 35년만의 폭설로 섬 전체가 마비되어 육상도로 뿐만아니라, 하늘길과 바닷길도 막혀버린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광령리에 도착해서 도두동 가는 버스를 타고, 도두동에 있는 해수찜질방에서 하루 묵고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가려했었는데, 버스들이 길위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으니, 버스를 탈수도 없었고, 길은 빙수처럼 엉망이되어 인도와 차도가 구별이 안되니, 이리 갔다 저리 갔다하면서 어느새 깜깜해진 길을 지도와 육감에 의지해서 엉덩방아도 찧어가며 아픈줄도 모르고, 밤 9시가 지나 겨우 찜질방에 도착해보니, 이미 찜질방은 발디딜 틈도 없는 콩나물 시루가되어 눕기조차 여의치가 않았다.

어찌어찌 모포한장 손에들고 사람들 틈에 새우처럼 잔뜩 구부리고 누었는데, 점점 추위가 엄습해왔다. 알고보니, 설상가상으로 폭설이 변전소를 덮쳐 정전이 되어 난방도 끊겼고, 목욕탕내의 온수는 물론이고 찬물도 나오지않아 화장실 사용도 여의치가 않으니 생지옥이 따로없었다.

그렇게 2박3일을 찜질방에서 꼼짝 못하고 갇혀있다가, 나흘 후 출발하는 항공권을 겨우 예약하고 제주도를 탈출했던 그 날의 기억이, 비록 지난 주말에 그곳에는 없었지만, 기시감(旣視感)처럼 되살아나는 온몸의 세포가 마치 그곳에 있는 것같은 이상한 느낌 속에서, 주말내내 따스한 집안에서 다행스런 마음으로 꼼짝않고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1월 24일 아침 9시가 되니, 찜질방 이용료를 다시 지급해 달라고 수차례 반복하던 안내 방송 소리가 트라우마가 되어 종일 귓전을 울렸다.

참 웃픈 추억으로 아직껏 생생하게 기억속에 살아있다니....

그때 그 기억들이 온전히 잊혀지고, 언젠가 미래에 데쟈뷔가 되어 기억의 저편에서 소환되는 일이, 제발 살아생전 반복되지 않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