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회자정리거자필반(會者定離去者必返)

Chipmunk1 2023. 11. 8. 06:02

만남 뒤에는 언젠가는 이별이 있고,
살아 있는 한 떠나간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하지요!

인연이란 것이 다 그런가 봅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인연도 그러하지만,
현대인에게는 휴대폰과의 인연도 마찬가지 같아요.

새벽녘 공사 중인 서귀포항 방조제 바위 위에 서서
좀 더 가까이서 바다 위 해돋이를 찍으려다
바위에 낀 이끼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바람에
과욕으로 한 발짝 잘못 내딛다 미끄러져
순식간에 몸의 균형을 잃고 잠시 허공에 떠있다가
천우신조로 날카로운 바위 모서리는 피한 채
휴대폰이 장착된 셀카봉은 손에 든 채로
새벽 바다물속으로 풍덩하고
보기 좋게 거꾸로 처박혀 버렸습니다.

일정에도 없이 용왕님을 잠시 만나 뵙고
물속에서 허우적대다 겨우 정신을 차렸지만,
휴대폰과 무선이어폰은 물론이고
새로 장만해서 이번 여행에 처음 동반한
사랑땜도 제대로 못한 고용량 보조배터리와
어깨에 메고 있던 크로스백 속의 모든 것이
수장되듯 바닷속으로 함께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휴대폰이 켜져 있어
캄캄한 바닷속 돌틈에서 살짝 삐져나온
불빛을 쫓아가 찾아들고 얼마나 기뻤는지요.

잘 건조해서 남은 여행기간 동안 잘 사용했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작동을 멈춰
서비스센터에 가서 폰을 열어보니
믿을 수 없게 바닷물이 흥건했어요.

담당 엔지니어로부터 바로 사망 판정이 내려졌고,
잠시 망설이다 신도림테크노마트 9층으로 달려가
급히 새 폰을 구입해서 현지 전문가를 소개받고
어찌어찌 죽은 폰에서 사진등 데이터를 내려받고
이틀 전 새 폰이 개통되어 종일 정상화시키고
어제 새벽 처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마구 담아본
새 폰의 마수걸이 사진을 음미해 봅니다.

나그네의 잘못으로 떠나간 휴대폰도 512기가 내장 메모리였지만, 새로 만난 폰 카메라의 2억 화소와  100배 줌의 위력에 흠뻑 빠져 당분간은 사진 찍는 재미가 쏠쏠할 듯싶습니다.

한동안 동고동락했던 지나간 폰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뜻을 전하고, 새로이 맞은 폰에게는 과유불급한 욕심을 자제하고 좋은 인연으로 오래오래 함께 하자고 구애해 봅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위해서라면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탐욕과 무모함으로
이 세상에서의 짧은 소풍을 마칠 뻔했지만,
나그네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생샷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