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Chipmunk1 2022. 6. 10. 08:17

비행기가 지연 출발하는 바람에
버스 놓칠까 조바심이 나서
연신 9호선 지하철 안에서
버스 도착시간을 초단위로 조회하면서
버스도착시간 5분여를 남겨놓고
지하철에서 급히 내렸다.

등에는 배낭을 짊어지고,
오른손엔 캐리어를 끌고,
왼손에는 교통카드와 휴대폰을 들고
뛰다시피 버스정류장을 항해 걸음을 재촉했다.

신논현역 1번 출구를 빠져나옴과 동시에
1550번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고 있었고,
줄섰던 승객들이 거의 다 타고 출발하려는 순간
'진인사 대천명'을 떠올리며 약 30m 거리를
단숨에 뛰어 버스에 간신히 올라탔다.

자리에 앉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왼손에 있어야할 휴대폰이 없었다.
주머니 여기저기를 다 뒤져봐도,
혹시나 해서 버스 바닥을 둘러봐도
휴대폰은 온데 간데 없었다.

'진인사 대천명' 까지는 좋았는데,
버스 놓칠까 서두르다가
나의 모든것이 담겨있는
소중한 것을 길바닥에 버려둔 채로......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버스가 반포 인터체인지로 우회전하면서
불법으로 끼어든 택시로 인해
심하게 좌우 앞뒤로 요동을 쳤고
버스기사의 육덕진 고함소리와 동시에
옆자리에서 졸고 있던 남자의 휴대폰이
버스 바닥에 떨어져 앞좌석 쪽으로 밀렸고
남자는 뒤로 눕듯이 발을 앞좌석 밑으로 뻗어
밀어 넣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휴대폰을 길에 버려두고
세상을 잃어버린 마음으로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나 앞좌석 끝부분에 떨어져 있던
옆자리 남자의 휴대폰을 주워서 건넸다.

그순간 번뜩,
내 휴대폰에 전화를 걸면
누군가가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옆자리 남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대폰을 빌려 내 전화에 발신 버튼을 눌렀다.

반갑게도 '여보세요' 하는 수신음이 들러왔다.

9호선 신논현역 1번 출구앞에서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그제서야 제대로 숨을 쉬고
소중한 사진이며,
소중한 지인들의 연락처며,
소소한 나의 모든것들을 되찾은 느낌에
기분좋게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막 지났다.

버스안에서 지옥과 천당을 잠시 왔다 갔다했다.
끝이 좋으니 모든게 좋다는 말이 실감나는 밤이었다.

휴대폰이 없는 동안 내 일상은 잠시 멈춰있었다.

손사례를 치면서
이러려고 휴대폰 주웠던게 아니라는
학생에게 억지로 약간의 사례금을
손에 쥐어주고나니
다시 내 삶은 일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