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3.
가을의 기억이 유독 많은 김제 모악산 기슭의 금산사에 가을이 지나간 뒤, 가을의 흔적이라도 찾을 요량으로 아무런 기대도 없이, 이른 오후에 한적해진 천사백여년의 오랜 연륜을 지닌 산사를 향해 걸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러나 기억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던, 매표소 왼쪽 산책로 입구의 단풍이 절정기의 환상적인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로 반겨주었다. 물론, 바싹 말라가는 낙엽을 밟을 때마다 사그락 거리는 소리에 바짝 귀를 기울이며, 하릴없이 가을은 가고 겨울이 왔음을 직감했다.
내 기억속의 금산사 가는 길은 일주문을 지나서 한참을 걸었었는데, 오늘 그 길은 서운하리 만큼 짧았다. 아마도 많이 그립던 금산사의 가을 흔적이 2% 정도 부족하다고 느꼈던 지나친 욕심 때문은 아니였나 싶다. 금산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랜드마크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고, 금산사가 간직하고 있는 현존하는 다수의 국보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미륵전은 비록 여러차례 소실되어 재건되고 중건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데, 오늘도 미진한 부분에 대한 보수공사로 먼 발치에서만 지켜봐야했다.
금산사 대웅전 오르는 길 오른쪽 샛길은 청아한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정겨운 내가 제일 걷고싶은 가을길이다.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오는 오솔길에서 주운 가을이삭은 금산사에서 가을의 흔적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제는 가을을 미련없이 온전히 보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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