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08.
작년 7월말 새벽, 인적이 전혀없고, 한라산 너머로 여명이 시작될 무렵, 으스스한 기분으로 때 마침 도착한 자동차에서 내린 젊은 커플과 동행해서, 남쪽의 경사는 가파르지만, 짧은 코스를 택해 조심스럽게 새별오름을 올라, 원하던 해돋이는 보지못했지만, 아침노을과 용의 형상을 한 구름이 어찌나 환상적이였던지, 지금 생각해도 흐믓하다.
그런데, 깊을대로 깊어진 가을 오후 새별오름의 너른 주차장에는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빈 주차공간을 찾는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주차장을 배회하고 있었다.
경사가 가파른 남쪽 오름은 줄지어 오르는 인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반면에 억새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북쪽 오름으로 오르는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않았지만, 남쪽에서 올랐던 사람들이 줄지어 내녀오고 있었다. 억새가 무성한 수풀 곳곳에서는 남녀노소 구별없이 포즈를 취하고 셔터 누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했다. 나날이 짧아지는 늦가을 해가 새별오름을 오르는 내내 억새수풀 사이에서 방긋 웃어주니, 실로 오랫만에 느껴보는 한가로움과 여유로움이, 억새로 뒤덮힌 새별오름에서 나 홀로 덩그마니 억새수풀을 헤집고 드러누운듯한 착각속에 잠시 행복했다.
북쪽오름에서 정상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오는, 삼천 걸음이 채 되지않는, 사십분 정도면 넉넉하게 종주를 할수있는, 새별오름의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북동쪽의 한라산과 북서쪽의 애월과 남서쪽의 대정과 남쪽의 서귀포가 어렴풋이나마 시야에 들어오고, 서쪽 바다위를 지나는 가을해가 황금빛 노을을 바다위에 뿌린 채로 서서히 수평선 너머를 향하는 모습에 눈을 떼지못하고, 아직도 열심히 올라오는 인파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한걸음 한걸음 서쪽 바다에 시야를 고정한 채로 200미터 남짓되는 남쪽 오름을 내려오다 잠시 뒤를 돌아보니, 저녁노을 직전 따스한 햇볕에 비춰진 가을이 억새수풀 사이에서 아직은 볼만한 단풍을 품고있었다.
마치, 경주의 커다란 왕릉과 비슷하게 보이는 아담한 새별오름을 뒤덮은 억새가 지는 해에 물들어 황금빛으로 변신한 모습을 기억속에 담아내며 새별오름을 뒤로하고 숙소가 있는 서귀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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