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제법 군인다운 늠름한 모습으로 부대앞 주차장으로 걸어 들어오는 아들을 보는 순간, 아들을 중심으로 아들만 눈에 들어왔다.
전날 저녁에 집에 올라와서 혹시나 길이 막혀 아들이 기다릴까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다.
덕분에 시간이 남아 꽃양귀비도 구경했고, 부대 앞에서 설렁탕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이밤이 지나면 다시 아들을 싣고 부대가 있는 현리로 가야한다.
얼마나 가기 싫을까?
이리 시간이 빨리 지나가리라 짐작은 했지만, 막상 마지막 밤을 맞고 보니, 아들의 심정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잠이 쉽게오지 않는다.
생각도 못했던 힘든 병과에서 그나마 잘 견뎌주고 선임들 한테도 인정 받고 잘 지낸다니 그걸로 위안을 삼을 밖에 별 도리가 없으니, 아들은 극구 아빠 힘들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왔다 가겠다는걸, 이렇게라도 아들을 데려오고 데려다주는것이 비록, 몸은 조금 힘들어도 마음이 덜 힘들다.
이제 내일이면 입대한지 겨우 4개월이 지나고, 아직 15개월이 남는다.
예전에 비하면야 별게 아닐뿐만 아니라, 요즈음 한참 뉴스거리가 되고 있는 아들의 소속 군단장의 강력한 체력훈련도 우리 같은 옛날 사람들 눈에는 요즘 군인들의 군기가 너무 엉망이라고 한마디씩 해대지만, 그런 시선들이 내게는 다소 불편하게 다가온다. 할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군에 가고 싶은 심정이다. 차라리 내가 겪는게 훨씬 마음이 덜 힘들것만 같다.
다 쓸데없는 생각인줄 알면서도 자식을 위해서는 못할것 없을것 같은 부모의 심정이 어찌 나 하나 뿐이겠는가?
엊그제 집에 오는 차안에서 "아빠! 지난 4개월이 빨리 지나간거 같아? 지루하게 지나간거 같아?" 라고 묻는 아들의 질문은 집에와서 엄마에게 똑 같이 한다.
지난 4개월이 4년은 된것 같은 심정을 아들은 알까?
’지난 4개월이 지나고 나니 참 빠르더라, 남은 15개월도 지금은 언제 지나가나 까마득하겠지만, 지나고 나면 금방일듯 싶구나’라고 대답하니, 아들은 너무 너무 시간이 더디 가는거 같다고 푸념처럼 말한다.
부디, 아들에게 아무일 없이 남은 군 생활이 잘 지나갔으면 더 바랄게 없겠다.
처음 학교기숙사에 혼자 남겨놓고 올때 안타깝던 심정과는 달리, 기숙사에서 친구들도 사귀고 나름 잘 적응하고 사회성도 한층 좋아졌던 경험에 비추어, 그나마 2년간 기숙사 생활한것이 지금 군 생활 하는데는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벌써 후임이 여덟명이나 들어왔고, 후임들이 눈치도 없고, 후임들 때문에 긴부들에게 혼났다는 얘기며, 그런 후임들에게 훈계도 한다는 얘기를 하는 아들에게서, 이제 제법 대한민국 육군 일병 1호봉 다운 면모가 보여 마음이 든든하다.
그리고, 웃통을 훌렁 벗고는 멋진 역 삼각형 몸매를 보이면서, "내 몸이 좀 좋아진것 같아?"라고 묻는다. 체력훈력이 힘들긴해도 옆구리 군살없이 근육질의 사내다운 몸매에서 풍겨오는 대한민국 정예 기갑부대 군인다운 믿음직한 젊은이가 눈앞에 서 있음에 뿌듯한 감동이 잠시 밀려왔다.
다만, 힘든 병과에서 근무중 안전사고 없이 무사히 남은 시간을 잘 지냈으면하는 바람은 전역하는 그날 까지 늘 근심으로 남을것 같다.
아들아!
내일 부대앞에 내려주고 되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것 같은 생각에 이렇게 아빠는 미리 헤어지는 연습도 할겸 몇글자 끄적여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전역하는 날 까지도 너를 데리러 현리에 가는 기쁨과 설레임은 포기할수 없는 아빠의 가장 큰 행복일듯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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