냐짱 이야기

베트남의 첫날 - 호치민

Chipmunk1 2018. 5. 29. 02:30

 

 

베트남은 한국 보다 2시간이 느리기에 갈때는 2시간을 얻게 되지만 돌아 올때는 반대로 2시간을 잃어 버리게 된다.

 

 

 

① 공항택시 요금의 함정

오후 12시 40분경 호치민의 딴손녓공항에 도착하여, 공항청사를 뒤로, 왼쪽의 택시 승강장에서 미터로 요금을 계산한다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약 40분 후에 도착한 택시의 미터기에는 59만동(약 3만원)이 찍혀 있었다. 사전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최소 17만동(약8,500원)에서 최대 20만동(악10,000원)이면 충분하다고 알고 있었다. 5분여의 실갱이 끝에 20만동으로 합의를 보고, 호텔 체크인을 했다.

 

 

② 벤탄시장에서 아티초크를 흥정하다.

 

 

베트남의 로칼푸드로 이름 높은 캐슈넛과 아티초크는 베트남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베트남에서 꼭 사와야 할 2대 기념식품이라 추천할 정도다.

 

호텔에서 독립기념관으로 걸어가는 길에 있는 벤탄시장에는 캐슈넛은 물론이고 아티초크가 산처럼 쌓여 있어, 아티초크와 캐슈넛을 판매하는 한 상점 주인과 금요일 오전에 재 방문키로 하고 가격을 최대한 깎고 또 깎았다.

 

 

 

③ 독립기념관 과 통일궁의 교훈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시대별로 전시한 독립기념관은 부패한 정권과 국민으로 부터 지지 받지 못한 정권은 역사의 뒤안 길에서 역사속의 죄인으로 남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더욱이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던 시절 1868년에 프랑스의 식민지 정부가 건축하고, 1954년 월남의 초대 대통령이던 응오딘지엠이 대통령궁으로 처음 사용하였고, 1975년 4월 30일에 월맹에 함락되어 이곳에서 월남의 마지막 대통령인 즈엉반민이 항복서에 서명하였고, 이후 통일궁으로 명명하여 일반 관광객들에게 유료로 개방되고 있었다.

 

 

 

1,400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호치민의 시민들은 아직 까지도 호치민의 곳곳에서 사이공에 대한 그림자를 지우지 못하고 있는듯 거리의 여기저기에서 사이공으로 끝나는 상호들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왔다.

 

호치민과 사이공이 어정쩡하게 동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음은 물론이고, 호치민이라고 무심코 부른 소리에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면서, 동시에 사이공 소리에 자연스럽게 엄지척 하면서 최고라 여기는 사람들을 어렵잖게 택시기사에서 부터 식당에서 만난 시민까지 한둘이 아니였다.

 

 

 

④ 노트르담 성당과 중앙우체국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인 1877년 부터 6년에 걸쳐 건축된 프랑스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연상시키는 호치민시를 대표하는 콜로니얼 건축물로 유명하다.

 

 

 

 

 

또한, 중앙우체국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우체국으로 프랑스의 식민정부가 1891년에 건설한 콜로니얼 양식의 건축물로 에펠탑을 건설한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해서 그 유명세가 한층 더한것 같았다.

 

 

 

⑤ 호치민의 부이비엔(Vui Vien) working street의 밤거리

 

 

 

여행자거리라 불리는 이곳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그리고 동서양의 남녀노소가 함께 잘 어우러진 활력이 넘치는 살아있는 거리였다.

 

 

 

⑥ 호치민 시청앞 광장의 야경

 

통일된 베트남을 보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한 호치민의 동상들이 시내 곳곳에 세워져 있지만, 특히 시청앞 광장에 세워진 호치민의 동상은 왠지 사이공을 그리워하는 호치민 시민들을 보이지 않는 힘으로 억압하려는 듯한 느낌으로 강하게 다가왔다.

 

호치민 거리는 수많은 오토바이가 내 뿜는 매연등으로 눈이 따갑고 목에 이물질이 들어 찬듯 이물감도 느껴졌지만, 미세먼지의 농도를 알길이 없기에, 체감온도 41도를 넘나드는 호치민의 기후에도 아랑곳 않고 약 23km를 걸었다. 마스크도 않고, 아니 마스크를 하면 질식 할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그냥 걸었다.

 

 

 

 

그리고, 시청 야경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호텔로 들어오는 길에 근처의 마사지샵에서 전신마사지를 1시간여 받고 호텔에 들어오니 어느덧 새벽 1시가 되면서 베트남에서의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