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뭣이 중헌디?

Chipmunk1 2017. 8. 1. 09:55

 

나는 지금 수술 대기중인 장인어른과 입원실에 있다.

 

세상을 살면서 매 순간 의사결정의 시간들이 다가온다.

 

지난 설날 마지막날에 장인어른을 모시고 정형외과에 가서 X-ray를 포함해서 척추부위 검사를 했다. 그러나, 의사도 적극 권유를 안했고, 장인어른도 통증이나 저림은 전혀없고, 다리에 힘만 없어진다는 말씀에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나이가 들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치부하고 잊고 살았다.

 

지난달 초에 장인어른으로 부터 연락을 받았다. TV에서 서울 강남의 *라메르**정형외과가 주사로 걸음걸이에 자신이 생기게 할 수 있다는 희소식을 보고 들었는데, 주사 한번 꼭 맞고 싶으시단다. 부랴 부랴 병원에 전화 상담을 하고, 가장 빠른 날짜로 예약을 했다.

 

무지개 꿈을 안고 상경하신 장인어른을 모시고 압구정동에 있는 병원에 찾아갔다.

그런데, 방송에서 소개한 것과는 달리 MRI(허리는 건강보험 수가가 적용이 안된다)를 찍게 한 다음, 주사로는 불가하다고 판정을 내린다. 뿐만아니라, 허리 디스크가 이렇게 심해질때 까지 치료도 안받고 방치했다고 안타까워했고, 심지어 협착증세도 매우 심해서, 여기서는 수술을 못하니, 가능한 조속히 큰병원에 가서 절개하고 튀어나온 뼈를 잘라내고 철심을 박아야 한다고 하는 말을 듣고, 무안한 마음과 장인어른께 무심했던 죄송함에 지난 설때 갔던 병원에 빠른 예약을 다시 했다.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도 막히던지, 장인어른과 오랜침묵 속에 집에 돌아와 집근처 경치 좋은 산속 장어집에서 장인어른 외동따님과 내 아들과 같이 장어에 쐬주 한잔으로 씁쓸한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집에서 멀지 않은 허리척추 전문병원에 갔다. 진료예약한 젊은 원장은 지난 설때 장인어른을 안심시켰고, 지난 두어달 동안 내 아들에게 도수치료를 처방해서 완쾌시킨 장본인 인지라 믿음을 갖고 MRI CD를 들고 진료를 받았다. 전날 겁나는 이야기를 했던 압구정의 의사와는 달리, 걱정할 것 없다며, 절개없이 간단하게 완치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술을 받기로 예약을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젊은 원장으로 부터 여짓껏 치료를 안받고 방치한 부분에 대해서는 질타아닌 질타가 들어와서 또다시 장인어른께 죄송한 맘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처남댁과 집사람은 좀더 알아보고, 더위가 물러간 9월쯤 시술 받자고 장인어른을 설득했고, 장인어른도 막상 시술을 받는게 부담스러웠던 차에 다음에 시술 받고싶다 하신다.

 

무엇이 중헌디!

 

나는 노발대발 했다.

 

일반적으로 세상사를 중요한 일, 중요하지 않은 일, 급한 일, 급하지 않은 일로 나눴을때, 우선순위는 중요하고 급한 일, 중요하지는 않지만 시급을 요하는 일(세금납부일 등등), 중요하지만 시급을 요하지 않는 일, 그리고 중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은 일의 순서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단언컨데, 중요하면서도 시기를 늦출 수 없는 중차대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장인어른 시술에 관련해서 일체 관여치 않을 테니, 9월에 하든 10월에 하든, 걷다 낙상하셔서 돌이키지 못할 불행이 찾아오든 자식들이 알아서 진행하라고 했다.

덧붙여서, 여러병원에 가서 상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 자식들은, 소심하고 겁많은 장인어른께 용기를 북돋아주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들어간 진정으로, 장인어른이 불편한 걸음걸이를 빠른시간 안에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말씀을 드리는게 자식된 도리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대안도 없이 시술을 지연지키려 해서는 안된다고 그들의 부정적인 생각에 일침을 가했다.

 

그때서야 더 이상의 이견이 없이, 어제 입원 후 각종 검사를 거쳐, 잠시후 시술을 시작하게 됐다.

만에 하나, 시술 결과가 안 좋아서 거동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좋아질 확률이 여전히 높고 나는 젊은 원장을 신뢰한다.

 

다 잘 될것이다.

 

장모님은 제주도와 해외여행을 모시고 다녔지만, 공교롭게도 식당을 운영하셨던 장인어른은 비행기 타보실 기회가 없으셨다. 죽기전에 비행기 한번 타보고 싶으시다 해서, 수술 잘 받고, 산에도 갈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꼭 모시고 가겠다고 약속을 드렸다.

 

그리고, 젊은 원장을 믿고 시술을 잘 견뎌 내시기로 했다.

 

지금은 수술전 마지막 잠시 깊은 잠에 빠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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