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3. 11.

봄의 전령사라 불리는 봄꽃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인 복수초(福壽草)는 봄의 전령사 중 으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홉 시에 개장하는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에 들어서자마자, 예년보다 보름 이상 늦게 온 봄이 열이틀 전 딱 한송이 보여줬던 진입로 초입의 복수초 군락을 매의 눈으로 구석구석 살펴보니, 기대한 만큼은 아니지만, 복수초 서너 송이가 띄엄띄엄 피는 중인지 지는 중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로 눈에 들어옵니다.
어느새 복수초가 폈다 졌나 하는 아쉬움을 안고, 더 이상 복수초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수목원 안으로 들어갑니다.

겨우내 즐겨 입던 기모 남방과 봄 조끼가 덥게 느껴질 정도로 따사롭다 못해 더운 느낌의 20도를 육박하는 듯 느껴지는 체감온도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듯한 화창한 수목원을 몇 차례 반복해서 돌면서 열이틀 전 봄꽃에 목말라했던 나그네는 물 만난 고기처럼 만개하기 시작한 영춘화(迎春花), 설강화(雪降花), 그리고 절정에 달한 풍년화(豊年花)의 향연에 넋을 잃고 찰나와도 같았던 두어 시간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어느새 발길은 무심코 수목원 출구를 향하다가, 아쉬움에 바라보던 복수초 군락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노란 복수초 수십 송이가 활짝 웃어주니 절로 발걸음이 멈춰집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복수초의 출현으로 조금은 지쳐있던 심신이 두어 시간 전 처음 수목원에 들어섰던 그 상태로 돌아갑니다.
존재감도 없던 늦잠꾸러기 복수초가 해가 중천에 뜰 무렵이 되어야 활짝 피어난다는 사실을 목도하고, 이른 아침 햇볕의 간섭을 덜 받을 때 꽃을 선명하게 담을 수 있다고 믿어왔던 나그네의 경직된 사고가 연꽃과 수련에 이어 복수초에서 깨어나며,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광고 카피가 꽃에서 연유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어둠 속에서 활짝 피었다가, 해가 뜨면 시나브로 사그라지는 달맞이꽃과 달개비꽃과 범부채꽃등도 있긴 하지만요.
동양에서는 영원한 행복, 서양에서는 슬픈 추억이라는 극과 극을 달리는 듯한 복수초의 꽃말에서 동서양의 문화와 정서가 사뭇 다름을 감지합니다.
눈 속에서도 노란 황금잔처럼 피어나는 복수초를 눈으로만 바라보면서 누군가는 영원한 행복을 꿈꿨을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눈 속에 피어난 노란 황금잔에 취해 복수초를 꺾어 입에 가져갔다가 복수초의 맹독에 중독되어 위험에 빠진 사람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동서양의 독특한 문화와 정서가 복수초를 보고 느끼는 감정 또한 서로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라도 복수초가 사약의 원료로 쓰이던 천남성 못지않은 맹독이 있음을 알게 됐으니, 더더욱 봄의 화신 복수초를 눈으로만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조금 늦게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다가 온 봄과 복수초를 사이에 두고, 우리의 봄은 맹독이 제거된 꿈같은 영원한 행복이 가득한 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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