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9. 02.
어스름한 새벽공기를 가르면서 내장산국립공원 진입로를 막아놓은 입구가 아닌 출구로 역주행해서 다리를 건너자마자 찻길 양쪽 햇살 한줄기 없는 풀밭에는 백양꽃이 활짝 웃으면서 나그네를 반깁니다.
백암산 백양사 부근에서 발견된 예사롭지 않은 상사화이기에 백양꽃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하더니, 이제는 백학봉 너머 내장사 부근에 백양사길 보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군락을 이루며 백양꽃의 성지로 거듭나고 있음에 자연의 위대함과 꽃의 정직함에 찬사를 보냅니다.
물론, 경사진 계곡에 위태롭게 피어있는 백양사 백양꽃에 비해 초가을의 그리움은 조금 덜 해 보이지만, 진한 미소만큼은 원조 백양꽃에 못지않습니다.
만일, 백양사 부근에서 백양꽃을 발견한 식물학자가, 내장사를 먼저 찾았다면, 내장사에서 백양꽃을 먼저 발견해서 내장꽃이라 불릴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내장꽃보다는 어감상으로도 백양꽃으로 이름 지어주기를 정말 잘했다 싶기도 합니다.
내장사 가는 길 초입부터 시작해서 우화정 부근에는 마치 애기단풍이 숲 속 땅아래서 거꾸로 매달려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에 충분한 붉어진 백양꽃의 유혹에 나그네는 내장사 경내로 들어가는 천왕문 앞다리까지 이어진 백양꽃과의 데이트에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머잖아 8말 9초의 내장사에서는 10말 11초의 애기단풍 축제에 못지않은 백양꽃 축제가 열리지 않을까 싶은데, 애기단풍축제로 심한 몸살을 앓곤 하는 내장사가 백양꽃 축제로 가을 내내 몸살을 앓게 될까 살짝 염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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