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7. 20.
잎이 쥐의 손을 닮았다 하여 쥐손이풀과에 속하지만, 다섯 장의 꽃잎마다 다섯 줄이 넘는 선명한 줄이 그어져 세줄뿐인 쥐손이풀 꽃과는 구별되는, 예로부터 민간에서 설사병인 이질에 효험이 있다 하여 이름 지어진 이질풀의 꽃인 이질풀 꽃이 만항재를 완전히 점령해서 여름꽃임을 실감 나게 합니다.
물론, 이질풀 꽃을 볼 목적으로 만항재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이질풀 꽃이 맑고 깨끗한 여름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처럼 만항재를 반짝이게 하는데, "꽃은 하나도 없이 풀만 무성하네"하며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실망 가득한 푸념을 이질풀 꽃이 듣지 못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송이 한송이 정성을 다해 담아봅니다.
작년 여름, 붉노랑상사화가 만발하던 부안 변산의 마실길(노루목 상사화길)에서 매력적으로 보였던,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흔하디 흔해서 여름이면 우리나라 산야 전역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꽃이 또한 이질풀 꽃 일지도 모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질풀 꽃은 다른 화려한 꽃들에 치어서 딱히 주목을 받지 못하는 그저 그런 보잘것없는 작은 여름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이름이 거시기하고 특별히 이쁘지 않다고 인식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아 졌는지도 모릅니다.
한때는 대체 불가능한 민간 영약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건만, 오늘날에는 과학문명의 그늘 아래 잊힌 전설 속의 민간 영약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의 쓰임에서 멀어져 버린 노후된 누군가가, 그래도 한때는 나도 잘 나갔었는데 하면서, 이질풀 꽃을 동병상련하는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질풀 꽃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수록 개체수를 늘려가며 만항재 숲 속을 밝게 밝혀줄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고목나무에도 꽃이 피고, 또다시 이질풀이 민간의 영약으로 거듭날 그날이 다시 오고, 노후되어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그 누군가도 세상의 중심에 다시 섰다고 함박웃음을 웃게 될 그날이 다시 돌아올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처럼,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숨 쉬고 있는 한, 시나브로 기다리던 기회가 다시 찾아 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오히려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그 자체만으로도 화려한 여름꽃으로 거듭나고 있는 이질풀 꽃을 만항재에서 고요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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