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6. 20.
계절이 바뀔 때면 털갈이를 하는 짐승들과 마찬가지로 야생화들도 계절에 민감한 것이 마치 동물들이 털갈이하듯 피고 질 때를 영특하게 알고 흔들림 없이 본연의 길을 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덧없이 흐르는 세월을 막지 못하고 세월에 끌려가는 것이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사월에는 얼레지꽃이 만항재를 호령하더니, 오월에는 벌깨덩굴이 뒤를 이어 만항재의 맹주가 되는가 했더니, 유월에는 범꼬리가 듬성듬성 만항재를 호령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숲 속으로 조금 들어가 보면, 지난 오월부터 조금씩 꽃을 피우기 시작한 쥐손이풀이 내 세상이다 하는 듯 가지 하나에 한 송이씩 꽃을 피워내고 만항재의 안방마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쥐손이풀이 번성한 곳 밖에서는 매발톱꽃이 만항재의 맹주인양 한 둘은 고개를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는 형상이 마치 레이저건을 쏘는 우주인을 닮아 있습니다. 산 아래에서는 벌써 자취를 감춰버린 매발톱꽃이 산으로 자리를 옮겨 마지막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듯합니다.
소나무가 서있는 숲 속에서 소나무를 의지하듯 서 있는 박새꽃이 큰 키를 이용해서 내가 만항재의 골목대장이라고 외치는 듯 중간중간 띄엄띄엄 그 존재를 알리려는 듯 서있습니다.
유월의 만항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종 야생화들이 나름의 세력을 키워가는 듯 보이지만, 칠월이 되면 과연 어떤 야생화가 만항재를 틀어쥐고 있을지 자못 궁금합니다.
사바세계의 중생들은 권불십년이라 하면서 서로 반목하고 비판하고 권력욕에 파묻혀서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되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야생화의 세계처럼 계절이 지나가면 사라졌다가 계절이 돌아오면 여지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규칙적인 계절 집권이 인간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면 세상은 좀 더 공평해지고 탐욕과 반목의 갈등과 근심 걱정이 줄어들지 않으려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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