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야기

하지(夏至) 하루 전 날 정선 만항재 천상의 화원에서 범꼬리가 피워낸 꽃과의 만남

Chipmunk1 2023. 6. 21. 06:53

2023. 06. 20.

일 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길기에,
햇볕의 양은 가장 많고,
밤의 길이는 가장 짧은 날이 바로 오늘 하지랍니다.

다행스럽게도, 어제저녁부터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비가 전국적으로 메마른 대지를 적시고, 이틀  전 여름이 타고 온 열풍열차를 식히고 있습니다.

여름이 온전히 도착하기 전 날, 정선의 만항재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더니,
만항재의 사월과 오월은 야생화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었기에, 유월의 만항재에는 과연 어떤 야생화가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설렘을 한껏 키워서,  5km의 꼬부랑길을 단숨에 올라가 만항재 야생화들의 낙원이자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하늘숲공원에 바쁜 걸음을 옮겨보았건만, 눈에 확 띄는 꽃은 보이지 않고 심지어 황량해 보이기조차 한 풍경에 나그네의 눈동자가 실망으로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어쩔 수 없이 야생화에 대한 기대는 접고, 오랜만에 야생화단지 탐방로를 유유자적 걷다 보니, 하나 둘 뭔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중 하늘숲공원과 나비공원 숲 속에서 하늘하늘 거리며 작은 억새풀처럼 생긴 범꼬리가 꽃을 피워 먼발치서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크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꽃이 핀 모습과 잎의 생김새, 뿌리의 형태 등이 모두 호랑이의 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범꼬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 범꼬리가 연분홍 꽃을 피우고 우뚝 솟아나 마치 우거진 숲 속에서 수십 수백 마리의 호랑이가 꼬리를 치켜세우고 모여 있는 듯한 재미있는 상상의 날개를 펼쳐봅니다.

개중에는 멋을 한껏 부린 호랑이의 유연한 꼬리도 눈에 띕니다.

비록, 형형색색의 다양한 야생화에 대한 기대치에는 훨씬 못 미쳤을지는 몰라도, 고산지대의 양지바른 숲에서 자생한다는 범꼬리 꽃과의 즐거웠던 시간들이 하지가 도착하기 하루 전, 유월의 만항재에서 야생화에 대한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새로운 추억을 쌓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