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1. 07.
설산(雪山) 한라(漢拏)와 절묘하게 잘 어우러지는 서귀포 남원에 애기동백숲이 있다 하여, 사려니숲길에서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따금씩 나타났다 사라 지기를 반복하는 설산 봉우리 백록담 남벽을 올려다보면서, 큰 기대 없이 찾은 동백포레스트......,
그러나, 유럽풍의 하얀 카페 옥상에서 내려다본 애기동백 군락이 마치 동그란 아기 머리에 촘촘하게 꽃을 꽂은 양, 조화로운 아름다움이 멀리 설산 한라에 더해져 색다른 제주의 멋을 한가득 품고 한껏 반겨줍니다.
자연스럽게 살짝 삐뚤어진 애기동백의 실사화를 걸어 놓은 듯한 카페의 창문 너머 보이는 풍경은 동백포레스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백미 중의 백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종일 짙은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애기동백 사이로 비교적 선명하고 친절하게 모습을 드러내 주는 하얀 눈이 두텁게 쌓인 한라산 백록담 남벽 절경에 넋을 잃고 자연스럽게 한동안 시선을 멈춥니다.
동지가 지난 지 보름 남짓, 한겨울의 짧은 해가 조금 길어진 듯 하지만, 아직은 아쉽게도 짧은 해가 중문 바다 쪽을 향해 애기동백을 붉게 물들이며 서서히 기울기 시작합니다.
해를 등진 까까머리 애기동백 사이로 간간이 비추는 햇살이 떨어진 분홍 동백꽃잎 위로 그림자를 만들고, 햇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애기동백이 수줍은 듯 한층 발그레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합니다.
애기동백숲의 한가운데서 잠들어 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영혼이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무료로 개방됐던 늦가을 김경숙해바라기농장처럼, 동백포레스트도 지금은 오천 원의 입장료를 받지만, 봄이 시작되고, 애기동백이 붉은빛을 잃어가고 탐방객들이 현저히 줄어들 즈음부터는 무료로 개방된다 하니, 가시리 녹산로의 유채꽃이 만발하는 삼월 중하순을 막 넘기고 제주를 다시 찾게 된다면, 한적한 오후에 잠시 들러 텅 빈 카페에서 향기 좋은 동백꽃 차 한잔 앞에 놓고, 파란 하늘과 한두 송이 달려있을 애기동백과 카페창을 사이에 두고 따스하게 눈 맞춤하며 도란도란 지난겨울의 아름다운 추억을 꺼내 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 나누고 싶어 지는......, 그러나 아직은 봄이 멀리서 손짓하는 한겨울의 동백포레스토에서, 애기동백과 설산 한라를 사이에 두고, 보내고 싶지 않았던 꿈같은 시간을 보내며, 막바지 새해 마수걸이 여정의 내리막길에 시나브로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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