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11월 4일, 제주도 해바라기

Chipmunk1 2022. 11. 10. 10:07

올해는 제대로 된 해바라기를 못 보고 지나가나 했는데,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제주시 회천동에 있다는 해바라기농장에 전화를 했더니, 아직도 해바라기가 피어 있으니, 언제든 편히 와서 보고가라는 친절한 응답에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급을 받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고민할 틈도 없이 516도로를 넘어 비자림로를 지나 교래리를 거쳐 한시간 여를 달린 끝에 설레이는 가슴을 다독이며 마침내 해바라기농장에 도착했습니다.

'김경숙 해바라기농장'은 축제가 끝난 뒤의 공허함 속에 사납게 짓어내는 커다란 개가 농장을 지키고 있었을뿐, 매표소도 문을 닫았고, 해바라기 관련 시식코너가 을씨년스럽게 흔적만 남아있을뿐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찾을볼 수 조차 없어 허탈해 할 즈음, 해바라기 축제가 끝나고나니, 사냥 후에 토사구팽되는 사냥개 처럼 해바라기가 대부분 제거된 농장의 안쪽 끝 부분에 제법 해바라기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내심 할렐루야를 외치며,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뱀이라도 나오지않을까 긴장도 하면서) 어른 키 높이의 해바라기 숲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이제야 막 피기 시작하는 해바라기들은 겨우내내 해를 바라보고 서있지않을까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보살핌과 관심도 없이, 가을의 정점을 비켜선 해바라기의 의연한 모습에서 은연중에 호연지기를 떠올립니다.
주위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주변의 말 한마디에도 여린 마음에 상처를 받고, 가끔은 힘든 마음에 위로 받을 곳을 찾아보지만, 자칫 마음이 더욱 더 힘들어졌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오로지 해를 바라보니 해바라기라 불려진 해바라기로 부터 호연지기를 배우고, 내가 나를 위로하는 값진 시간을 가져봅니다.

해바라기 축제가 끝나고, 대부분 해바라기를 뽑아낸 후 일부 남은 해바라기 군락이 이정도라면, 정작 축제가 한창일 때의 해바라기농장의 모습은 가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라도 해바라기를 올해가 가기전, 가을도 정점을 지난듯 싶은 늦은 가을에 마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더우기 아무런 절차없이 소중한 농장을 개방해서 아무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김경숙 해바라기농장주의 넉넉한 마음에 존경을 표합니다.
해바라기를 좀 더 가까이서 보고싶은 마음에 마치 정글처럼 온갖 잡풀들이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다니느라 본의 아니게 나의 거친 발걸음에 걸러 꺽인 작은 키의 아기 해바라기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내년에 다시 기회가 된다면, 감당하기 버거울 해바라기를 만나 보고싶은 마음을 심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 나의 전용이 되어준, 한창 때에 비하면 초라할 수도 있는 해바라기농장이, 홀로 감상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으며, 자유롭게 가까이 해바라기를 맘껏 볼수 있어, 오늘은 오래도록 기억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지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