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5개국 탐방기

여행과 휴식 사이에서 비엔나의 숲속 이야기를 듣다 (2018. 06. 22)

Chipmunk1 2018. 7. 14. 01:02

 

집을 떠난지 어느덧 일주일 하고도 이틀째로 접어드니, 몸이 휴식을 간절히 원해 왔다. 

 

그래서 오늘은 대략적인 여행 일정이 빈(Wien)채로, 진정한 휴식을 위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도심 속의 숲, 우리나라와 비교 하자면, 남산과 유사한 그린칭(GRINZING)에 가서, 그린칭에서 재배한 포도로 담근 포도주 맛도 보고...... 예쁜 노상 카페에서, 그리고 언덕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도나우강을 비롯한 비엔나 시내를 내려다 보면서, 그린칭 둘레길(내가 붙여 본 이름임)을 들꽃들과 함께 거닐면서 나에게 휴식을 주기로 했다. 

 

비엔나 중앙역에서 S3 기차를 타고, 다시 U6 지하철(졸다가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옴)을 타고, 다시 38번 트램을 타고 무념무상하게 종점 까지 가니, 어느새 그린칭 아랫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트램에서 만난 아기가 마치 인형처럼 예쁘고 귀여워서 잠시 넋을 놓고 띄엄띄엄 동영상을 찍었다.

물론 아기 엄마의 동의도 없이.ㅎㅎ 

 

한적한 시골마을 같은 정서가 묻어나는 그린칭은 슬로우시티 지정을 받은 내가 알고 있는 몇몇 마을들 보다 훨씬 더 슬로우시티 스럽게 보였다.ㅎㅎ

 

예쁜 길옆 카페에 들어가 그린칭에서 생산된 특제 적포도주를 한모금 입에 머금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가,

 

몸을 뒤로 비스듬히 한 채로, 지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를 잡아도 봤다.

 

등 뒤 가까이서 오후 두시 정각을 알리는 교회 종소리가 정감있게 들려왔다. 프라하의 카롤 다리 위에서도 프라하 성에서도, 트램을 타고 지나가다가도 매시간 정각을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여기저기서 은은하게 귓전에 들려오는건 프라하나 비엔나나 한결 같았다.

 

어린시절, 시골 동네 교회당에서 들려오던 종소리가 그리워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부터 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하루에 몇번 울리던 교회 종소리 마저도, 민생을 괴롭히는 소음으로 규정돼서 더 이상 교회 종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교회가 우후죽순 처럼 자고 나면 몇십개씩 생겨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드높은 신앙심이 나의 어린시절 낭만 까지 빼앗아 간건 아닌지 모르겠다. 

 

잠시 후, 주문한지 이십분 정도 지나 맛있게 구워진 얇은 피자와 담백한 파스타가, 어제 점심 쪽갈비 과식으로 잃어 버린 입맛을 자극해 왔다.

 

와인을 곁들인 피자와 파스타가 노상 카페의 분위기를 타고 어느새 마파람에 개눈 감추듯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ㅎㅎ

 

어제 낮 기온은 무려 33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행인들의 옷차림이 간단해도 너무 간단해서, 이따금씩 시선 처리 하기에 곤란을 겪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기온은 15도를 밑 돌았고, 낮 최고 기온도 17도를 넘지 않으니, 행인들의 옷차림이 갑자기 칙칙해지고, 심지어는 패딩에 머플러 까지 등장했다.

 

그래서, 후식으로는 시원한 아이스크림 보다는 따뜻한 비엔나커피(아인슈페너)를 주문 했지만, 이곳 카페에서는 아인슈페너가 메뉴판에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그린칭에는 비엔나커피가 정말 완전히 없었다.ㅎㅎ

 

할 수 없이 종업원이 권하는 따뜻한 카페라떼를 한잔하고,

 

카페에 들어온지 두시간여 만에 카페를 나와, 그린칭 언덕위 까지 가는 38A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마주보고 앉는 구조의 버스는, 건너편 승객과 가끔 의미없는 눈 맞춤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각선 방향 우리 또래의 여자가 고개를 살짝살짝 돌리면서 피식피식 버스에서 내릴때 까지 십여분간 계속 웃어댄다.  이따금씩 휴대폰을 거울 삼아 화장도 고쳐가면서.ㅋㅋ

 

 그린칭 정상 부근에는 비엔나 모듈대학교가 있었다.

 

학교 벽에는 벽화처럼 각기 다른 언어가 적혀 있었고, 또렷하게 "책임과 관리"라는 한글도 있었다. 옆 벽면에는 "혁신"이라고도 씌여 있었다.

 

한글로 "면세점"이라 써놓아 한국인 전용 면세점임을 암시했던 비엔나 시내의 한글과는 사뭇 다른, 보기 뿌듯한 한글이었다. 

 

그리고, 그린칭 언덕을 돌아 내려가는 숲속 길을 아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마치 서울의 남산둘레길을 걷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걷는 내내 정말 행복했다.

 

진정한 휴식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예쁜 산길 위에는 보랏빛이 유혹적인 도라지모싯대와 노오란 색이 매혹적인 서양고추나물(혹은, 갈퀴망종화)등의 들꽃들과 심지어 는 산딸기가 군락을 이루면서 비엔나의 허파와 같은 그린칭의 숲길을 맘껏 즐기며 휴식케 해 주었다.

 

 엊그제 도나우강에 실망했다고 망언을 했었던가?ㅎㅎ

오늘 발 아래 펼쳐진 도나우강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것만 같았다.

도나우강 오른편에 또렷하게 보이는 슈테판 대성당과 쉔부른 궁전도, 오늘 또다시 머릿속에 깊히 각인되었다. 

 

그리고, 남산의 서울탑 전망대에서 한강을 내려다 보는 느낌을 다시금 느껴본다. 어쭙잖은 향수병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전망대 앞 교회 마당의 조형물을 뺑 둘러싼 사랑의 자물쇠가 더더욱 남산 전망대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요한스트라우스가 이곳에서 악상을 만나 "비엔나 숲속의 이야기"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작곡했던건 아닌지 묻고 싶다. 다만, 도나우강이 푸르르다고 표현한 것은 발 아래 푸른 포도밭과 도나우강물을 혼돈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린칭 언덕 위에서 한시간 여 도나우강과 비엔나 시내를 감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하산 길을 재촉하게 했다.

 

 비록, 내일 아침 빈을 떠나지만 빈을 떠올릴 때마다 그린칭에서 내려다 본 아름다운 도나우강과 푸른 포도밭은 같은 궤적 속에서 항시 움직일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