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용궐산하늘길 늦잠꾸러기 봄

Chipmunk1 2025. 3. 12. 06:50

2025. 03. 10.

저 문을 통과하면 입신양명 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친 황하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새롭게 펼쳐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삶에 대한 소중한 소망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오롯이 가슴에 품고 따스한 봄볕을 아래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작년 2월 말에는 일찍 찾아온 봄 덕분에 용궐산하늘길 시작 전, 경사진 둔턱 아래 만첩흰매실 꽃이 만발해서 용궐산하늘길 등용문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로 꽃과 벌과 나비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다가, 정작 용궐산하늘길 트레킹은 시작도 못해보고  꽃밭 속에서 바라만 보다 왔었는데......

이번봄은 지난겨울의 헤어나기 힘든 충격 속에서  유독 더디게 시작되는 것 같아, 최대한 늦춰서 잡은 봄 여행 일정 중 가장 늦은 날에 용궐산하늘길의 만첩흰매실 꽃을 만나러 왔건만, 안타깝게도 만첩흰매실 나무는 꽃망울조차 맺히지 않아, 하릴없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꽃 대신 등용문을 지나 돌계단으로 시작하는 용궐산하늘길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애초에 용여산(龍女山)에서 용골산(龍骨山)이 되었다가 용궐산(龍闕山)으로 거듭난 바위산에 아슬아슬하게 연결해 놓은 나무데크길이 자연을 훼손한 것은 분명했지만, 한편으론 파스텔색의 하늘과 섬진강의 넉넉한 푸른 물과 장군목이 한눈에 보이는 그림 같은 순창군 동계면의 풍광에 제법 잘 어울려 크게 눈에 거슬리지 않는 호위무사같이 든든한 데크길의 도움을 받아 편안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용궐산하늘길 종점에 세워진 비룡정(飛龍亭)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을 둘러싸고 있는, 청정 매실의 산지 동계의 수려한 풍광이 답답했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줍니다.

비룡정에서 잠시 머물다, 올라올 때 조금은 거칠었던 호흡이 콧노래로 바뀌어 만첩흰매실 꽃 대신 용궐산하늘길 트레킹을 무사히 마칩니다.

이제 막 봄을 시작하려는 늦잠꾸러기 용궐산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 듯, 사바세계의 봄도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찾아와 주길 피그말리온의 간절함으로 간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