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6. 10.
일기예보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여행의 아이러니를 알면서도 흐리다던 일기예보가 화창으로 바꾸니 기존의 일정은 다 잊고 렌터카를 인수하자마자 애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새별오름으로 달려갑니다.
동쪽 오름의 가파른 경사를 피해, 완만한 서쪽 오름으로 오르니, 서쪽 바다는 이미 불이 붙어 있었고, 이 대로라면 생각지도 못한 새별오름 해넘이를 볼 수도 있겠다는 설렘으로 30 여분 남은 일몰 시간이 너무 긴 듯싶어 조급해진 마음을 어쩌지 못해 새별오름 정상을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합니다.
멀리 보이는 비양도가 황금 바다 위에 떠 있는 신비의 섬이 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태양이 비양도라는 책을 비추는 독서등 같이 비양도를 황금빛으로 물들여놓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태양은 조금씩 서북 방향으로 움직이며 비양도를 살짝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신비의 섬 비양도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일몰 시각이 십 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구름이 태양을 에워싸기 시작하면서 왠지 해넘이는 여기서 멈출 수도 있겠다는 경험치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절한 바람도 소용없이 태양은 구름 속에 갇혀 서서히 사라져 버립니다.
제대로 해넘이를 볼 수도 있겠다는 일몰 40 여분 전까지의 희망이 여지없이 깨어지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태양은 서쪽 바다와 하늘에 여운을 남긴 채로 서쪽 바다 밑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태양이 사라지고, 땅거미가 새별오름 동쪽오름 능선으로 퍼져 올 때, 산수국이 위로의 손길을 보냅니다.
또한, 능선 곳곳에 자리하고 있던 인동덩굴도 고운 꽃과 향기로 다음을 기약하려는 듯 어둠 속에서 희망을 전해줍니다.
비록, 기대했던 해넘이는 허락되지 않았지만, 가파른 동쪽오름으로 리드미컬하게 새소리에 발맞춰 친절하게 깔아놓은 야자 카펫을 성큼성큼 내려오면서, 입장료도 주차료도 없는 새별오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제주에서의 첫날밤을 기꺼운 마음으로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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