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결에 오셨나
가지마다 다닥다닥 맺힌 빗물 밥알들
하늘이 보낸 봄비 한 사발에
박태기나무는 배가 불러 붉게 물듭니다.

수만 개의 꽃샘추위를 견디며
꼭 닫아걸었던 자줏빛 입술들
그 무거운 침묵의 문장을 깨고
딱 한 송이, 기어코 첫마디를 뗍니다.
"이제 그만 일어나렴."

투명한 눈물 같은 빗방울 속에는
세상을 깨울 화약이 숨어 있어
비가 그치고 볕이 내리는 어느 오후,
줄기마다 분홍빛 불꽃놀이가 시작되겠지요.

젖은 몸으로 가장 먼저 깨어난
저 기특한 꽃송이 하나가
렌즈의 초점 끝에서
올해의 봄을 가장 먼저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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