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양사 경내의 고즈넉한 기운을 뒤로하고 천진암으로 향하는 길을 잡았습니다. 오르는 길 왼쪽 산기슭, 아직은 갈색 낙엽이 주를 이룬 그 메마른 땅 위로 하얀 보석 같은 꽃송이들이 점점이 박혀 있습니다. 낮은 곳에서 수줍게 고개를 내민 산자고(山慈姑)입니다.

이 작은 꽃의 이름에는 가슴 뭉클한 전설이 담겨 있습니다. 옛날 어느 산골, 홀로 된 시어머니가 종기가 나 고생하는 며느리를 위해 추운 산속을 헤매다 발견한 꽃이라고 합니다. 그 뿌리를 캐어 정성껏 발라주었더니 며느리의 병이 씻은 듯 나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름에도 '산골의 자애로운 시어머니(慈姑)'라는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

보통 고부갈등을 이야기하는 세상이지만, 이 꽃만큼은 서로를 아끼는 그 지극한 마음을 닮아 참으로 맑고 정갈합니다.



렌즈를 낮추고 가만히 눈을 맞추어 봅니다. 화려한 목련이나 매화처럼 멀리서도 눈에 띄는 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얀 꽃잎 위로 흐르는 연보랏빛 줄무늬가 얼마나 섬세한지 모릅니다. 햇살이 잘 드는 산기슭에 터를 잡고, 오가는 이들의 발소리를 묵묵히 들으며 제 자리를 지키는 그 모습이 참으로 겸손해 보입니다.



오늘 나그네가 담은 사진 속에는 산자고의 가녀린 외형뿐만 아니라, 그 속에 감춰진 단단하고 자애로운 생명력도 함께 담겼기를 바라봅니다.

꽃 한 송이가 건네는 위로가 이토록 깊으니, 올봄도 나그네의 마음은 이미 넉넉합니다. 천진암 가는 길목에서 만난 이 작은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며 봄과 즐거움을 함께 나눠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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