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세상의 색들이 숨을 죽이고
오직 순백의 언어만 남았습니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하얗게 지워진 그곳
윗세오름의 허리는
구름보다 두꺼운 눈의 외투를 입고
북벽의 등줄기는 서슬 퍼런 은빛으로 빛납니다
구상나무 가지마다 피어난 설화(雪花)는
바람의 결을 따라 얼어붙은 시간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들려오는
눈의 바스락거림은 산이 내쉬는 깊은 숨소리입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고결한 저 설원 위에
묵은 마음의 티끌을 남김없이 털어내면
비로소 우리는 산의 결백을 닮아갑니다
햇살조차 눈이 부셔 비켜가는
이 눈부신 적막 속에서
산은 흰 옷을 입고 가장 거룩하게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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