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안동 봉정사 영산암의 봄날 부처님 오신 날 풍경 스케치

Chipmunk1 2025. 5. 10. 00:59

2025. 05. 05.

어릴 적 (음력)사월초파일로 알았던 부처님 오신 날이 올해는 공교롭게도 어린이날과 겹쳐 주말과 대체휴일 포함 나흘간의 긴 연휴로 고단한 삶에 찌들었던 중생들에게는 꿀 같은 휴식이 되었지만, 눈으로만 봐도 분주한 봉정사를 피해 영산암에 오르니, 여전히 영산암은 북적임 없이 차분하게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합니다.

우화루 아래를 겸손한 자세로 지나 그동안 속세에서 오염된 심신이 깨끗하게 씻기는 느낌은 저절로 온화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나한전 아래 화단에는 화사한 분홍색 모란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그네를 반겨줍니다.

늘 굳게 닫혀있던 나한전의 문이 활짝 열려있고, 황금빛 찬란한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른편엔 제화갈라보살이 왼편엔 미륵보살을 거느리고 온화한 미소로 반겨줍니다.

과거를 상징하는 연등불(燃燈佛, Dipankara)의 성불 전 제화갈라보살과 현재를 상징하는 석가모니 부처님, 그리고 미래를  상징하는 미륵불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나한전(羅漢殿)을 작은 우주로 만들어 중생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함께 아우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나한전은 과거의 잘못된 삶을 뉘우치고 현생의 올바른 삶과 내세의 안녕을 기원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엄숙한 기도의 장이 되어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부처님 오신 날과 우리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날이 겹친 뜻깊은 날에 영산암에서 잠시 머문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으며, 얹듯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학교에서 사월초파일에는 집 근처에 있던 마곡사에 가는 걸 허용하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무슨 이유로 그런 제한을 했던 것인지 지금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가팔라 보이는 영산암 오르는 돌계단을 바라보면서, 살아온 경험이 많으니 아는 것도 많아지고, 뜻대로 이룰 수 있는 삶의 노하우도 늘어날 것 같지만, 현실은 살면 살수록 뜻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는 인생의 아이러니 속에서 부처님 오신 날, 한국의 아름다운 10대 정원으로 잘 알려진 영산암 나한전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산당화는 이미 왔다 갔지만, 절정의 모란이 다 지기 전에 작약이 피어나는 나한전 아래 아기자기한 화단에, 여름이 오면 불두화와 옥잠이, 가을이면 꿩의비름과 인도칸나와 금잔화와 백일홍이 아름다운 영산암은 지금으로부터 한국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정원으로 거듭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