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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함덕해변의 추억

Chipmunk1 2025. 4. 5. 06:46

2025. 03. 20.

지금으로부터 44년 전 여름 방학, 당시의 트렌드였던 집채 만한 빨간 트렁크배낭에 옷과 쌀과 김치등 식량과 코펠 버너와 심지어는 침낭과 텐트와 우비까지 넣고서 서부역에서 목포행 야간열차(비둘기호)를 타고, 다음날 오전 11시경 목포역에 도착하여, 목포항에서 저무는 여름밤에 제주행 여객선(안성호였든가 도라지호였든가 가물가물)에 몸을 싣고, 새벽 6시쯤 11시간 만에 제주항에 도착하여, 집을 떠난 지 2박 3일 만에 제주도에 처음 발을 내딛고, 제주도에서 첫날밤을 보낸 곳이 바로 함덕해변이었지요.

낭만을 즐기려 완행 야간열차를 탔던 것도, 한 시간 이면 갈 수 있는 비행기 대신 11시간 걸리는 야간 여객선을 탔던 것도 아닌, 단지 15박 16일간의 여행경비를 아껴보려는 단순한 의도였으니, 당시는 시간적인 여유는 있었으나,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가 않았고, 한참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주머니 사정은 좀 나아졌으나, 시간 내기가 힘들었던 인생이 돈과 시간으로 점철된 삶의 부조화라는 아이러니가 늘 존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오래된 기억이 맞다면, 당시 여객선은 승선요금이 8천 원 정도 했었고, 그나마 학생은 30% 할인이 되었던 시절이었으니, 응당 긴 시간과  작은 돈을 바꾸는 선택을 했던 것이지요.

지금은 흔적조차 없어진 해송 군락이 해변에 우거져 있었고, 비가 간간이 내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를 조금 막아주는 소나무 사이에 텐트를 치고 밥까지 해 먹었던,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비가 내린다면, 지금이라면 당연히 널려있는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이나 펜션에 묵었겠지만, 당시에는 동네 주민들이 부수입으로 가정집 빈 방 한 칸을 내어 빌려주는 민박집을 소문으로 알고 있던 시절이었건만, 민박집에서 비를 피할 생각도 못하고, 당연히 텐트에서 짧은 여름밤을 보냈던 추억만 남아있을 뿐, 어떻게  비 내리던 제주에서의 첫 밤을 보냈는지는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를 않네요.

꽤나 넓었던 해변에서 동행했던 선배 둘과 셋이서, 비가 개인 조용한 새벽에 일어나 식사 당번과 설거지 당번을 걸고 달리기 시합을 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함덕해수욕장의 고운 모래사장과 맑고 청정한 바다는 그대로인데, 젖 먹던 힘을 다해 해변을 뛰어다니던 팔팔했던 그 청년은 어느새 관절을 걱정해야 하는 장년이 되었네요.


지난 겨우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이제는 간절히 바라던 일상으로 회귀하면서, 나그네는 어느덧 추억을 파먹으며 하릴없이 휩쓸려 가고는 있지만, 결코 빨리 가고 싶지 않은, 이제는 어느 정도 돈과 시간은 가능하되, 신체적인 기능을 염려해야 하는,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되는 낯 선 노인의 길목에 서서 당황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해송이 우거졌던 함덕해변에는 야자수가 듬성듬성 협재해변과 금능해변을 닮아가고, 당시에는 없었던 즐비한 현대식 상가건물 4층 식당 창가에서 함덕해수욕장을 내려다보면서, 44년 전 처음 제주에 와서 첫날밤을 보냈던 추억을 애피타이저 삼아 전복돌솥밥과 옥돔구이로, 느지막하게 또 다른  추억의 장을 넘기며, 점심식사를 마치고 함덕해수욕장을 총총히 떠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