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2. 27.



나그네는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을 진심 사랑합니다.
전주에서 30년 이상 살고 있는 지인이 전주수목원의 존재감을 모르고 있음에 깜짝 노랐지만, 나그네는 2019년 봄에 처음 방문한 이래로 철이 바뀔 때마다 적어도 계절마다 두 번 정도는 방문하게 되는 최애 수목원입니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여유로운 무료주차장 이용과 무료입장은 유료로 이용해야 하는 고속도로휴게소의 보상버전이 아닌가 혼자만의 해석을 해봅니다.
거기에 더해, 작년 가을부터 현대식으로 리모델링 중이던 주 출입구가 운치 있고 모던하게 완공되어, 한층 고급스러움과 편안함이 돋보입니다.
공교롭게도 작년보다 따스한, 작년과 같은 날에 영춘화는 물론이고 복수초와 설강화가 활짝 피어 반겨줄 것으로 기대하고 찾은 수목원의 수생식물원 2와 유리온실 주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영춘화 나무는 이제 겨우 꽃눈이 틔기 시작했을 뿐이었고, 흰 백의 순결한 색으로 수줍게 피어있던 죽림원과 들풀원이 만나는 한적한 정원의 설강화는 온데간데없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노래하던 이상화 시인의 외침이 들려올 듯 말 듯, 각종 들풀들의 푯말만 질서 정연하게 세워져 있을 뿐, 눈은 거의 녹았지만 지난겨울이 아직도 방을 빼지 않은 듯, 마치 나그네의 가슴속에 찾아올 오매불망 봄과 함께 오려는 듯 황량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나마, 수목원을 빠져나오면서 아쉬움에, 다시 한번 주 출입문 주변 복수초 군락을 꼼꼼하게 현미경 들여다보듯이 살펴보다가 드디어 바위틈에 숨어 핀 귀하디 귀한 봄의 전령사 한가족 네 식구를 발견하고는, 나그네의 가슴속에서 간구하던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확신해 봅니다.
영춘화가 조금 늦게 피면 어떻고, 설강화를 내년에 다시 기다렸다 보면 어떻겠어요. 온 세상에 봄이 오고 있다고 복수초가 빼박 소식을 전해주고 있기에, 복수초 네 송이로 인해 새벽부터 달려온 177km의 여정이 뿌듯한 희망으로 보상받은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월과 오월의 봄을 준비하는 장미나무들의 스산함은 장미원 아래 수십 종의 목련들이 언제 피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꽃몽우리를 부풀릴대로 부풀린 채로 봄을 기다립니다.

뿐만 아니라, 추운 설날 직전 섣달에 핀다는, 매화를 연상시킬 만큼 매화를 닮았다는 몇 송이 남지 않은 겨울꽃 납매(臘梅)가 고개를 살짝 들어 봄이 아주 가까이 와있노라고 수줍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아직은 황량하게만 보이는, 들풀원 끄트머리 신축건물 공사현장 부근에는 샛노란 베르날리스풍년화를 비롯해, 붉은색으로 개화를 시작해서 붉노랑색으로 성숙해지는 풍년화 '비목눔 풀리케리다운', 그리고 조금은 짧고 투박한 꽃잎을 가진 키가 큰 연노랑 인테르메디아풍년화 '팔리다'가 수목원 내 들풀원의 겨울과 봄을 이어주는 계절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막바지 꽃 피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수목원의 노지와는 달리, 따스한 유리온실 속의 큰 열매시계초가 온몸으로 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실감케 하고, 봄의 왕림을 알리는 봄비가 연휴 내내 내리다가 꽃샘추위로 잠시 눈으로 뒤바뀌어 내릴지라도, 그 비와 눈이 그치고 잠시 꽃샘추위가 지나가면, 수목원에도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될 듯합니다.

비록, 천지신명의 보살핌으로 완전히 빼앗길뻔했던 봄(자유와 평화)이 아직은 일부 몰지각한 꽃샘추위 같은 세력들로 인해 가까이서 애태우고 있지만, 알게 모르게 시나브로 나그네가 오매불망 기다리는 유리온실 속 극락조화 같은 진정한 봄이 한가득 설렘으로 왕림해 주길 간절하고도 간절한 심정으로 차분히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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