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제천 비행장 활주로 백일홍

Chipmunk1 2024. 9. 20. 02:27

비행기의 이착륙이 전혀 없는
제천 비행장 동편 끝,

비행기가 있다면,
이륙을 시작해야 하는 활주로에는

온갖 종류의 백일홍이
다양한 색깔을 하고
흐릿한 초가을을 맞고 있다.

백일은 피어있다 하여 백일홍이니,

추석 지나고도 한참을 지나  
시월 초까지는 황량하고 척박한
이곳 비행장을 아름답게 꾸미고,

어려운 시기에 현지인들 뿐만 아니라,
나 같은 외지인들에게도
적잖은 위로를 준다

그나마,

가까이서 음미할 수 있는
소망스런 꽃들이 있어
삭막하고 기약도 없는,
시련과 고통의 시간들을
그럭저럭 넘기고
견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피고 지고,
백일을 견디는 백일홍,

적어도,
백일 동안은 활짝 웃을 수 있는
백일홍을 보면서,

암울한 시간 속에서
다시 한번
희망을 품고 기운을 차려본다.

비록,

잦은 가을비로
뿌연 하늘이
우울하게 만들지라도,

울긋불긋 형형색색의 백일홍이
잠시지만 큰 위안을 준다.

오늘도 비록,

흐린 날이
계속 이어진다 해도

내일은 어쩌면,

쨍쨍한 가을볕으로
형형색색의 백일홍이
황량한 활주로를
아름답게 꾸며주리라는
작은 소망을 살포시 품어본다.

그래서 나그네는,

백일홍이 피어있는
백일동안 만이라도
무조건 행복하기로 스스로를 달래 보련다.

풀벌레의 청아한 노랫소리를 따라
가을은 어느새 시나브로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