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7. 10.
나그네의 기억 속에 꽃으로 너를 비교적 최근에 만난 것이 몇 해 전 유월 어느 날 강원도 고성의 해파랑길 46코스가 지나는 청간정 부근이었고, 그 뒤로 영덕의 바닷가와 선유도해수욕장과 제주도 성산의 해안도로에서 너를 반갑게 만났었지.
그리고, 열매를 맺은 너를 최근에 만난 것은 몇 해 전 칠월 어느 날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이었는데, 같은 곳에서 한 달 정도의 간격을 두고 너를 꽃으로도 만나고 또 열매로도 만난 곳은 네가 즐겨 머무는 바닷가가 아닌 안동댐 민속마을 초입의 작은 연못이라 조금 신기하기도 했지만, 아무런 기대도 없이 너를 만난 반가움은 두 배 이상 크더구나.
장마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흐린 날에 그것도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가고 난 뒤 햇살이 살짝 비치던 다된 저녁에 한참 농익은 너를 만나 한컷 한컷 담아내는 순간순간이 나그네에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단다.
그리고, 순하게 장마가 지났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너를 떠나고 난 뒤, 채 사나흘도 되기 전에 수마가 전국을 덮쳤고, 더군다나 너를 만나고 거쳐온 여러 지역들에서 끔찍한 산사태와 강물의 범람으로 고귀한 생명들을 잃은 가슴 아픈 소식을 접하고 나서 사흘 전 부모님의 스물여섯 번째 기일을 보내면서, 나그네는 죽고 사는 것에 대한 허무한 생각에 빠져 헤어나기 힘든 시간들을 보냈단다.
이제야 조금 마음을 추스르고, 이번 수마로 희생된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들의 명복을 빌고 또 빌면서 한없이 숙연해지는 마음으로 다시금 너를 보면서 차분하게 새벽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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