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일 동안 붉게 피어 무더운 한여름을 지킨다 하여 이름 붙은 백일홍.

세미원의 초록 융단 위로 저마다 가장 화려한 옷을 입은 백일홍들이 다정하게 피어났습니다.

노랗고 붉은 얼굴 위로 붕붕거리며 찾아온 아기 벌들의 날갯짓에 고요하던 꽃잎이 가볍게 흔들립니다.


하트와 육각형 프레임 속에 꼭꼭 눌러 담은 꽃송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뜨거운 여름 햇살도 이 고운 빛깔을 다 시샘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눈부신 계절의 한가운데서, 서로 다른 빛깔로 어우러져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가만히 마음을 뉘어봅니다.

세미원 백일홍을 노래하다
백 가지 고운 빛깔 송이송이 피어나
하트 속 붉은 얼굴 벌 나비도 쉬어가네
뜨거운 세미원 뜰에 피어난 꽃 대궐아

백일홍은 전체적으로 ‘인연’, ‘그리움’, ‘행복’이라는 고운 뜻을 품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꽃의 빛깔에 따라 조금씩 다른 마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붉은색: "인연, 떠나간 그리운 이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

주홍색: "변함없는 헌신과 정성 어린 마음"

노란색: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 매일의 행복"

분홍색: "포근한 인연과 아끼는 마음"

백일홍의 붉은 빛깔 속에는 먼 옛날 바닷가 마을에서 내려오는 아주 애틋한 약속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옛날 바닷가 마을에 머리가 일곱 개 달린 괴물이 나타나 해마다 처녀를 제물로 바쳐야 했습니다. 어느 해, 한 처녀의 차례가 되었을 때 용감한 청년이 나타나 괴물을 물리치겠다고 나섰습니다.
청년은 떠나기 전 처녀에게 약속했습니다.
"내가 괴물을 물리치고 승리하면 배에 '흰 깃발'을 달고 돌아올 것이요, 혹여 내가 죽게 되면 '붉은 깃발'을 달고 돌아올 것이니 그리 아시오."
처녀는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청년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백 일째 되던 날, 저 멀리 드디어 배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배에는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처녀는 절망에 빠져 그만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슬픈 오해였습니다. 청년은 괴물을 무찌르고 승리했으나, 괴물이 죽으며 뿜은 피가 그만 배에 달아둔 흰 깃발을 붉게 물들였던 것입니다.
뒤늦게 사실을 안 청년은 통곡하며 처녀를 고이 묻어주었습니다. 그 후 처녀의 무덤가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났는데, 처녀가 청년을 기다린 백일의 시간 동안 붉고 화사하게 피어났다 하여 이 꽃을 '백일홍(百日紅)'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백일 동안의 간절한 기다림과 약속이 붉은 꽃잎으로 다시 피어난 것이라 생각하니, 정성스레 사진으로 담아낸 백일홍 송이송이가 한층 더 깊고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저마다의 빛깔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저 꽃들처럼, 이 여름날 우리의 인연도 더욱 깊고 아름답게 영글어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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