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7. 01.

세미원 후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이른 아침, 지루할 법한 기다림의 시간을 채워준 것은 두물머리 담장 너머로 탐스럽게 고개를 내민 살구나무였습니다. 제법 굵고 큰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문득 옛 어른들이 쓰시던 정겨운 속담 하나가 툭 떠오르더군요.
"죽어도 살구"

아무리 힘들고 곤란한 처지에 놓여도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려 하거나,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짐짓 버텨내는 모습을 위트 있게 비유할 때 쓰는 말이지요. "죽어도 살고(살구) 봐야지" 하는 언어유희 같기도 해서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담장 위에서 꿋꿋하게 뜨거운 여름 햇살을 버텨내며 익어가는 살구를 보니, 참 이름 한 번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싱그러운 초록 잎사귀 사이로 연둣빛을 조금씩 벗겨내며 노랗게 익어가는 살구들이 참 고왔습니다. 이미 달콤하게 잘 익은 녀석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툭툭 땅으로 떨어져 있더군요.

마침 그 길을 지나던 어느 노부부가 땅에 떨어진 살구들을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가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트 매대 위에 예쁘게 진열된 과일보다, 거친 담장 밑에 떨어진 살구 한 알이 훨씬 더 달콤하고 향긋한 법이지요. 노부부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 가득 번졌을 살구 향이 마음까지 달콤하게 채워주는 듯했습니다.

이른 아침의 청량한 공기 속에서 만난 뜻밖의 선물 같은 풍경. 자연이 주는 소박한 위로 덕분에 무더위로 시작되는 농익어가는 여름 아침이 청량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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