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영실의 새벽을 밝히는 동심(童心), 노린재나무 꽃을 보며

Chipmunk1 2026. 6. 16. 07:46

2026. 06. 08.

새벽을 걷는다.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한라산 영실 탐방로, 세상의 소란스러움은 저 멀리 아래에 두고 오직 바람의 나지막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걸음을 옮긴다. 발끝에 스치는 풀잎들이 밤새 머금었던 새벽이슬을 툭툭 털어내며 초록빛 싱그러움을 품어낼 때, 저만치 초록 무더기 위로 새하얀 눈이 내려앉은 듯 눈부신 존재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초여름의 산길을 환하게 밝히는 주인공, 바로 노린재나무 꽃이다.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는 풀숲의 조그만 곤충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나무에는 우리 조상들의 소박하고도 명민한 삶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옛날 전통 염색 장인들이 옷감의 색을 오래도록 붙잡아둘 잿물을 만들 때, 주변의 수많은 나무를 태우다 이 나무의 가지와 잎을 태워 만든 재에서 유독 노란빛을 띠는 투명한 잿물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노란 잿물이 나오는 나무'라 하여 부르던 '노란재나무'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노린재나무'라는 정겨운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인간의 삶을 은은하게 물들여주던 고마운 쓰임새가 그 이름의 뿌리였던 셈이다.

카메라 렌즈를 한껏 당겨 새하얀 꽃송이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자그마한 다섯 갈래의 흰 꽃잎 위로 가늘고 긴 수술 수십 개가 사방으로 삐죽삐죽 뻗어 나와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아무런 계산도, 경계도 없이 세상을 향해 순수하게 두 팔을 벌린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 같다. 혹은 깜깜한 밤하늘을 수놓는 작은 꼬마 폭죽들이 일제히 펑펑 터지는 듯한 생동감도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이 나무의 꽃말은 다름 아닌 '동심(童心)'이다. 때 묻지 않은 영실의 맑은 공기 속에서 유독 이 꽃이 가슴을 정화해 주는 느낌을 주는 것은, 꽃이 품은 이 순수한 에너지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가장 맑은 감정을 가만히 건드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특히 고지대의 거센 바람과 척박한 바위틈을 견디며 자란 영실의 노린재나무는 평지의 그것보다 수형이 더 단단하고 야무지다. 거친 자연 속에서 피어났기에, 하얀 꽃잎마다 맺힌 투명한 이슬방울이 더욱 청초하고 강인해 보인다. 저 멀리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서 있는 구상나무 고사목의 은빛 실루엣과, 그 아래를 가득 메운 새하얀 노린재나무 꽃의 대비는 오직 이 계절, 이 시간에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만 허락된 비밀스러운 풍경이다.

초여름에는 눈부신 하얀 폭죽으로 새벽길을 열어주지만, 이 나무는 가을이 되면 또 한 번의 경이로운 반전을 준비한다. 보통의 나무들이 붉거나 검은 열매를 맺을 때, 노린재나무는 보석 터키석을 닮은 선명하고 시린 남색 빛깔의 열매를 영글어낸다. 가을 산을 찾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그 푸른 열매는 새들에게는 고마운 양식이 되고, 우리에게는 깊은 여운을 선물할 것이다.

바람이 슬쩍 가지를 흔들자, 이슬 머금은 하얀 꽃송이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조용히 소곤거린다. 서두를 것 없다고, 그저 지금 이 순간 세상을 향해 가장 순수한 불꽃을 피워내면 그뿐이라고.

영실의 이슬을 머금은 노린재나무 꽃과의 짧은 만남은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치열한 일상 속에서 문득 마음이 흐려질 때마다, 초록빛 새벽녘을 하얗게 수놓았던 그 순수한 '동심'의 불꽃과 청량한 이슬의 기억을 오래도록 꺼내어 보게 될 것 같다.